[희망이 싹트는 교실]서울 영도초등교 “선생님은 공부중”

  • 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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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도초등학교 1학년 7반의 수학 시간. 클리어 파일 속지와 하드보드지를 활용한 숫자 쓰기 판은 담임교사의 아이디어와 학부모 도우미의 합작품이다.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숫자만큼 빈칸을 채우고 있다. 신원건 기자
서울 영도초등학교 1학년 7반의 수학 시간. 클리어 파일 속지와 하드보드지를 활용한 숫자 쓰기 판은 담임교사의 아이디어와 학부모 도우미의 합작품이다.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숫자만큼 빈칸을 채우고 있다. 신원건 기자
《‘낮에는 공교육, 밤에는 사교육’이란 현실이 고착화되고 있다. 비록 공교육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미래 세대들은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교실에 활력이 넘칠 때 부모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희망이 싹트는 교실’은 교사 학생 학부모가 힘을 모아 학교에 신바람을 불어넣는 현장을 찾아간다. 이 희망의 싹이 전국 각지의 학교로 퍼지기를 기대한다.》

“우선 한 달치 수업지도안을 정리해서 제출해 주세요.”

“일주일치도 아니고 한 달치라니….”

일순 조용해진 교무실 곳곳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학습지도에만 ‘올인(다걸기)’해 주세요. 잡무는 과감히 줄이겠습니다.”

일부 교사는 지시를 거둬 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했지만 김동섭(60) 교장은 완강했다.

김 교장은 지난해 3월 서울 양천구 목동 영도초등학교에 부임했다. 그는 “실력 있는 교사가 알찬 수업을 해야 교실이 살아난다”면서 교사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영도초교는 학력 신장을 목표로 한 교실 수업 개선 작업을 2년째 벌이고 있다.

1학년 담임 박영주(46·여) 교사는 일거리를 들고 퇴근하기 일쑤다. 학교 전체에 야간 보안장치가 작동하는 오후 8시까지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한 달치 수업지도안을 만들어 같은 학년 담임끼리 1주일에 서너 차례 워크숍을 해요. 동료 교사의 지도안에 대해 평가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죠.”

이 학교는 올해부터 학년별로 같은 시험을 치르는 대신 학급별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학기 초 담임교사들은 시험 과목과 일시, 횟수 등을 학교에 적어 낸다. 최소 두 번 이상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네 번이나 치르는 반도 있다.

김 교장은 “성적을 한 줄로 세워 비교하기 좋아하는 학부모도 있지만 학생의 부족한 점을 알아내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게 효과적이어서 학급 평가 방식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학급 평가는 객관식과 서술형 문제의 비율이 3 대 7이다. 담임교사가 난이도에 따라 문제당 배점도 달리한다. 학급별 문제는 공개되기 때문에 교사들은 정성껏 문제를 출제하고 서로 배울 기회를 얻는다.

6학년 김예진(12) 양은 “반에서 치르는 시험은 서술형이 많아 예전 시험보다 훨씬 어렵다”며 “담임선생님이 모든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예전보다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도는 학부모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 때문에 가능했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학부모 30명은 수업 자료를 만들어서 교사들에게 제공한다. 교사들은 수업 자료를 제작할 시간에 지도안을 만들고 수업을 준비한다.

학습자료지원 도우미인 학부모 이현경(39·여) 씨는 “유명 학원 강사 이상으로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학교에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방학 때 이 학교 교사 전원은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연수를 신청했다.

영도초교 교사들은 대개 오후 7∼8시에 퇴근한다. 이 때문인지 영도초교는 교사들이 기피하는 학교가 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김 교장은 오후 5시면 교문을 나선다. 일이 빨리 끝난 교사들이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교사가 스스로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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