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감동 캐는 도굴꾼…‘마이 캡틴, 김대출’

  • 입력 2006년 4월 2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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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도굴꾼 김대출(정재영)과 아이들의 눈물겨운 우정을 담은 휴먼 드라마 ‘마이 캡틴, 김대출’. 사진 제공 에이엠 시네마
문화재 도굴꾼 김대출(정재영)과 아이들의 눈물겨운 우정을 담은 휴먼 드라마 ‘마이 캡틴, 김대출’. 사진 제공 에이엠 시네마
영화 ‘마이 캡틴, 김대출’에 출연하는 건 배우 정재영에게 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작품의 흥행 여부를 떠나 연기 자체로만 따져 보자면, 정재영은 ‘실미도’에서부터 시작해 ‘아는 여자’ ‘귀여워’ ‘웰컴 투 동막골’ ‘나의 결혼 원정기’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연기 상승세를 타면서 어느새 남자배우 ‘빅3’(송강호 설경구 최민식)에 버금가는 성격파 배우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이런 그가 아이 두 명과 옥신각신하면서 ‘대장’ 노릇을 하는 소박한 영화 ‘마이 캡틴, 김대출’을 선택한 건, 그 자체로 ‘사건 아닌 사건’이다. 그가 세상의 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는 ‘수명 긴’ 배우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연기자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문화재 도굴꾼 김대출(정재영)은 탁월한(?) 솜씨로 경주에서 금불상을 도굴한다. 대출은 우연히 마주친 맹랑한 마을 소녀 지민에게 불상을 맡기지만, 흡혈귀가 되는 게 소원인 소년 병오는 불상을 훔쳐 어딘가에 숨겨 버린다. 사람 좋은 대출은 이들의 대장노릇을 하면서 때론 구슬리고 때론 윽박지르면서 불상을 돌려받고자 하지만 쉽지가 않다.

‘…김대출’은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클라이맥스를 보여 준다. 매몰된 굴 속에 갇힌 소년을 구해내기 위해 대출이 진흙을 미친 듯이 퍼먹어 가면서(그는 이런 방식을 통해 땅과 교감한다) 땅을 파헤치는 장면은 정재영이란 배우에게 깃든 두려울 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그는 출발 후 단 5초 만에 시속 100km를 돌파하는 지상 최고의 스포츠카처럼, 자기 내부에 숨어 있는 감성의 액셀러레이터를 순식간에 밟아 감정의 비등점에 오른다.

하지만 영화는 결정적인 오류를 기획단계서부터 품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 자체가 심심한 것을 두고, ‘소박하고 정감 있는 이야기’라고 스스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관객은 진한 클라이맥스를 맛보기 위해 1시간여 동안의 지루함을 감내할 만큼 성인군자가 못된다.

이 영화는 엄청난 감동의 한방을 먹이겠다는 큰 욕심 이전에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 가겠다는 작은 욕심을 부렸어야 했다. 불치병 소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서커스단, 경상도 사투리 등의 장치만으로 눈물샘이 쉽게 열릴까. 감동은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피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송창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20일 개봉. 12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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