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57>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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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관영이 설공을 죽이고 하비(下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8월이 다하기도 전에 서(西)광무에도 전해졌다. 옹치가 돌아온 일로 은근히 기세가 올라 있던 한왕은 그 소식을 듣자 장량을 불러 말했다.

“자방(子房)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 가는 것 같소. 관영이 하비성을 떨어뜨렸다면 팽성 옆구리에 창끝을 들이댄 것이나 다름이 없소. 관영에게 사람을 보내 팽성을 들이치라고 재촉하고, 다시 항왕에게 사람을 보내 달래 보는 게 어떻겠소? 부모님을 과인에게 돌려보내고 화평을 맺은 뒤 각기 군사를 거두어 봉지(封地)로 돌아가자고 하면 아무리 항왕이라도 이제는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대왕께서 바로 보셨습니다. 신도 막 대왕께 그 일을 권하려던 참입니다.”

이번에는 장량도 그렇게 선선히 대꾸했다. 그때 한왕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문득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누구를 사자로 보냈으면 좋겠소? 원래 이런 일은 역((력,역)) 선생 이기(食其)나 수하(隨何) 같은 사람들이 잘 해냈으나 하나는 과인을 위해 나섰다가 이미 죽었고, 다른 하나는 지난번에 관중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또 구변 좋은 육고(陸賈)조차 달포 전에 항왕을 달랜답시고 갔다가 욕만 보고 돌아왔으니, 이번에는 누굴 보내야 될지 모르겠구려. 그렇다고 자방 선생이나 진(陳)호군을 보낼 수도 없고….”

장량이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던 듯 별로 망설이는 법 없이 한왕의 말을 받았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하겠습니다. 마치 이 일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군중(軍中)에 붙들어 둔 것 같은 사람입니다.”

“그게 누구요?”

한왕이 한편으로는 반갑고도 다른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막빈(幕賓)으로 있는 후공(侯公)입니다. 틀림없이 항왕을 달래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후공이라, 막빈으로 있는 후공이라…아, 후성(侯成). 그 비쩍 마르고 눈빛이….”

한왕이 그러면서 여러 막빈 중에서 후공을 따로 기억해 냈다. 그러나 그 얼굴빛은 별로 밝지 않았다. 한참이나 이름에 이끌려 나온 인물을 머릿속에서 살피는 듯하더니 별로 탐탁잖아 하는 목소리로 다시 장량에게 물었다.

“자방은 어째서 후공이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보시오?”

“후공은 지난번 육고가 우리 진채를 떠날 때 이미 일이 잘되지 않을 것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육고는 공연히 숲을 헤쳐 뱀만 놀라게 할 것이며, 어깨 위에 목이 남아 돌아오면 다행일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남이 하는 일을 두고 등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말하기는 쉬운 일이오. 또 그 말이 용케 맞아떨어졌다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후공의 성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잖소?”

“그렇지 않습니다. 후공이 그렇게 엄중한 일을 군중(軍中)에서 공공연하게 떠들어 댄 것은 나름대로 그 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정히 궁금하시면 그를 불러 물어보신 뒤에 사자로 보내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한왕도 후공을 불러 보아 밑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든 듯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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