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레스토랑+요리학원’퓨전 스튜디오 인기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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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인근에 있는 요리 스튜디오 ‘아틀리에 데 셰프’에 모인 사람들이 요리사의 설명에 따라 식재료를 다듬고 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인근에 있는 요리 스튜디오 ‘아틀리에 데 셰프’에 모인 사람들이 요리사의 설명에 따라 식재료를 다듬고 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프랑스인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고급 요리학교 출신 요리사들은 목숨 걸고 음식을 장만한다. 몇 해 전 베르나르 루아조라는 요리사는 레스토랑 안내서 ‘고미요 가이드’ 평가에서 점수가 2점 떨어졌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프랑스에서나 일어날 만한 일이다. 그렇긴 하지만 프랑스인의 요리 실력이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솜씨가 떨어진다고 한다. 식품회사 네슬레의 푸드 매니저 출신인 니콜라 베르제로 씨는 “프랑스인은 모두 요리를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30대 이하의 프랑스인 중 요리를 할 줄 아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명문 MBA 출신인 그는 동생과 함께 파리 샹젤리제에 ‘아틀리에 데 셰프’라는 요리 스튜디오를 열었다. ‘젊은 층에 요리의 즐거움을 가르쳐 스스로 건강한 식단을 꾸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이곳은 요리를 가르치지만 학원은 아니다. 중앙에 넓은 주방이 있고 한쪽에 깔끔한 식탁이 있다. 스튜디오에 온 이들은 점심과 저녁 시간에 주방에서 요리를 배운 뒤 직접 만든 음식으로 식사를 한다. 레스토랑과 요리 학원을 결합한 ‘퓨전’인 셈이다.

이 요리 스튜디오는 입소문이 퍼져 예약이 일주일씩 밀릴 정도다. 점심 시간에 간단한 요리를 배워 식사를 즐기는 ‘런치 클래스’가 특히 인기다.

지난 금요일 이곳을 찾았을 때도 남녀 10명이 요리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 메뉴는 바닐라와 딸기를 얹은 파이, 밀페이유와 양엉겅퀴를 곁들인 훈제 연어, 왕새우와 햄을 결합한 요리다.

“훈제 연어는 세로로 길게 썰어 손가락에 서너 번 감아줍니다. 이렇게 해 보시죠.”

수강생들은 요리사 필리프 크라츠 씨의 지도에 따라 손을 움직이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한 청년은 서투른 칼질 때문에 연어가 모양대로 잘리지 않자 그냥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븐에서 갓 꺼낸 뜨거운 철판을 맨손으로 만지다 놀라는 여성도 보였다. 요리와 멀어진 오늘날 파리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훈제 연어를 다듬는 동안 밀페이유에 쓸 캐러멜이 완성됐다. 버터 설탕 크림을 섞어 끓인 고소한 냄새가 조리실에 가득 차자 모두들 ‘울랄라’를 외쳤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엔 전문직 종사자가 많다. 런치 클래스는 요리를 배우고 식사하는 비용을 포함해 15유로로 파리 시내 웬만한 식당의 점심 가격과 비슷하다.

여자 친구와 함께 클래스에 참가한 중소 기업의 재무관리매니저(CFO) 스타판 사르(31) 씨는 “요리에 집중하니까 스트레스가 해소되더라는 친구의 권유로 왔다”고 말했다.

파리 여행 일정을 쪼개 프랑스 음식을 배우려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금융 회사나 화장품 회사에서 직원 20여 명이 단체로 예약을 해 ‘단합 대회’를 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건강한 식단을 되찾기 위해서 이곳을 즐겨 찾는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부동산 전문가 카롤린 르쿠르(31) 씨는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법을 배우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틀리에 데 셰프’는 최근 파리의 최대 규모인 라파예트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같은 콘셉트의 다른 요리 교실도 잇따라 생기고 있다. 파리 11구에 자리 잡은 ‘아틀리에 데 센’도 그중 하나. 이곳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식 요리뿐 아니라 중국이나 모로코 등 이국적인 음식도 배울 수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 올해 초 베스트셀러가 된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를 쓴 프랑스인 미레이유 줄리아노 씨는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으면서도 건강과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프렌치 패러독스’의 비결로 건강한 밥상과 여유 있는 식습관을 꼽았다.

하지만 요리의 천국 프랑스에도 이런 신화가 깨지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 전국 체인인 냉동식품 전문점 ‘피카르’는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판매하고 있다. 냉동피자 업체는 프랑스를 가장 큰 해외 시장으로 삼고 있으며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 업체도 매장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비만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인의 비만율이 1997년 이후 매년 5%씩 높아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자 최근 사회당의 장마리 르 그웬 의원은 비만율 낮추기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시점에서 문을 연 ‘아틀리에 데 셰프’의 성공 사례는 프랑스 요리의 전통과 건강한 식단을 지키려는 욕구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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