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美서 창작 팝페라 ‘레인’ 무대 올린 임오혁씨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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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CMC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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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흥미로운 공연이 될 것 같군요.”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요크시어터의 스티븐 마틴 프로듀서는 6월 창작 팝페라 ‘레인(Rain·비)’의 공연 신청을 면밀히 심사한 뒤 이렇게 말했다. 공연기획자 임오혁(任午爀·31) 씨의 두 번째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청혼이 받아들여진 것만큼이나 기뻤습니다. 내년 4월 일단 2주간 6회의 공연을 통해 대형 팝페라를 선보이기로 최근 계약을 했습니다. 재정 여건과 관객들의 호응을 봐가며 한 달 정도의 장기공연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후 목표인 브로드웨이 무대로 가는 디딤돌을 확보한 셈입니다.”》

임 씨는 무척 감격스러운 표정이다. 올 2월 첫 번째 공연과 마찬가지로 뉴욕시티오페라의 지휘자 테드 테일러가 내년에도 지휘봉을 잡고 브로드웨이의 유명 연출자 로라 애드윈, 음악연출자 토머스 컬타이스 등이 제작에 동참한다고 그는 소개했다. 공연 예산 20만 달러 확보가 과제다. 이어 2007년 초 서울 공연을 위해 예술의 전당 등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

‘레인’은 6·25전쟁 당시 미군 장교 피터와 사랑에 빠진 북한군 대령의 딸 레인이 부친으로부터 피터를 독살하라는 지시를 받고 괴로워하다가 사랑을 털어놓고 대신 자살한다는 스토리. 북한과 전쟁이 소재로 등장해 ‘로미오와 줄리엣’ 타입이면서도 긴장감이 흐른다는 평가를 받았다.

임 씨의 목표는 단순하다. 세계 최고의 브로드웨이 무대에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 뮤지션들의 꿈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려면 우선 이보다 규모가 작지만 창작품 위주로 공연하는 오프브로드웨이 무대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은 60여 개 있습니다. 해마다 이곳을 노리는 전 세계의 창작품은 수천 개죠. 경쟁률요? 수백 대 1이라는 식의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 작품이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관객을 맞는 것은 ‘난타’에 이어 두 번째다.

그의 ‘브로드웨이 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모하게 보였지만 올해 초 공연을 통해 한걸음 더 현실로 다가왔다. 2월 23, 24일 맨해튼 헌터칼리지 케이플레이 하우스에서 열린 초연의 성공 덕분이었다.

팝페라 ‘레인’의 첫 무대에서 사랑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북한군 대령의 딸 레인(소프라노 김수정)과 미군 장교 피터(테너 조지프 메이욘). 사진 제공 CMCUSA

“하필이면 첫날 저녁 맨해튼에 큰눈이 내렸습니다. 폭설을 뚫고 누가 오겠나 싶어 초조하게 객석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1000석의 객석이 거의 꽉 차더군요.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둘째 날은 관객이 더 많았다. 백스테이지에서 커튼콜을 지켜보던 그는 새로이 각오를 다졌다. 200여 명의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공연 직후 샴페인 파티를 열어 주었다. 미국인 출연자들은 “잊지 못할 공연이었다”면서 당시 뉴욕 메네스 음대 전문연주자 과정의 유학생이던 임 씨에게 “다음 공연이 있다면 또 참여하고 싶다”고 감사 섞인 인사를 했다.

경희대 음대를 졸업하고 2000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임 씨가 창작 팝페라 ‘레인’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뉴욕에서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직후였다. 막연하기만 한 ‘세계평화’를 음악으로, 예술로 그려보고 싶었다. 성악가 지망생으로 오페라나 콘서트 무대에 서왔던 그의 관심도 연출 제작 쪽으로 바뀌었다.

평소 극작활동을 해왔던 그는 노랫말을 만들어 갔다. 그의 희망을 전해들은 한국 유학생과 미국 학생들 상당수가 동참하겠다고 자청했고 공연계획은 나날이 커져 갔다. 메네스 음대 작곡과 출신 박혜경 씨가 곡을 붙였고 알음알음으로 만난 김민아 김범일 박태진 씨 등이 자원봉사자로 나서 지쳐 가는 임 씨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첫 공연에서 부닥친 시련은 돈. 스폰서를 잡기가 어려워 미국 뉴저지의 크지 않은 신혼살림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겨우 공연살림을 꾸려 갔다. 임 씨는 돈 이야기를 물어볼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젊습니다. 공연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 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임오혁씨는

△1974년 서울생(31세)

△1997년 경희대 음대 졸

△2000년 미국 유학

△2003년 미국 뉴욕 메네스 음대 석사

△2005년 메네스 음대 전문연주자 과정 졸업

△2005년 팝페라 ‘레인’ 공연 기획

■팝페라란?

팝(Pop)과 오페라(Opera)의 합성어. 클래식 오페라와 달리 팝 음악처럼 불러 일반대중이 쉽게 이해하도록 만든 오페라를 말한다. 실험적인 장르로 투자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그동안 대형 공연은 없었다. 임오혁 씨의 팝페라 ‘레인’은 미국 저작권협회로부터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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