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초등생 제자 이끌고 첫 서울수학여행 김용택 시인

  • 입력 2005년 6월 18일 04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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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김용택.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시인이 최근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갔다. 평생 섬진강변을 지켜 온 시인에게도 서울은 볼 만한 구경거리라고. 그는 “고향과 시는 마치 다하지 못한 옛사랑 같아서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다”며 웃었다. 안철민 기자
‘섬진강 시인’ 김용택.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시인이 최근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갔다. 평생 섬진강변을 지켜 온 시인에게도 서울은 볼 만한 구경거리라고. 그는 “고향과 시는 마치 다하지 못한 옛사랑 같아서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다”며 웃었다. 안철민 기자
“세월이 가면/길가에 피어나는 꽃 따라/나도 피어나고/바람이 불면/바람에 흔들릴라요/세월이 가면/길가에 지는 꽃 따라/나도 질라요…/강물이 모르게 가만히/강물에 떨어져/나는 갈라요….”(‘서시’)

‘섬진강 시인’ 김용택. 그는 풀꽃 같은 사람이다. 섬진강에 내리는 산그늘 같은 사람이다.

문단에서 섬진강의 지적재산권(?)은 그에게 귀속된다. 후배 시인 이문재에 따르면 “섬진강은 ‘용택이 성’의 부동산처럼 여겨진다”던가.

전북 임실군의 섬진강변 진메마을에서 나고 자라 36년째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시인.

교편을 잡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순창농고를 졸업한 그 이듬해에 친구 따라 교사시험을 보러 갔다 스물한 살에 선생이 되었다. “내 인생은 그때 시작된 거여….”

그는 자신의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에서 ‘2대에 걸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코흘리개 아이들은 자라 어느덧 학부모가 되었고, 그 자녀들도 어느새 분가할 나이가 되었으니.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서른두 명. 그가 가르치는 2학년은 네 명뿐이다. “그래도 봉급은 다 받는다”고 웃는다. 그런 그가 최근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갔다. 수학여행은 이 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이란다. 왜 하필 서울이냐고 물으니 “애들이나 나나 시골뜨기에겐 서울만 한 구경거리가 없다”고. 시인 이전에 교사로서, 두 아이의 학부모로서 요즘 교육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부모들이 제발 아이들을 그냥 놓아두었으면! 공부를 못한다고 기를 죽이고, 일등을 못한다고 세상의 줄 밖으로 내몰아서야 되겠어? 학교가 아이들을 저 혼자만 잘 먹고 잘살려는 쩨쩨한 사람으로 키우고 있어요.”

아들 민세를 대안학교인 전남 담양군의 한빛고로 보낸 것도 공부뿐인 이 답답한 세상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어서다. “요리사가 되겠다고 해서 그리하라 했지요.”

얼마 전 출간된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은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민세에게 틈틈이 쓴 편지를 모은 것이다.

연초록의 끝에서 비가 오는 어느 봄날 시작된 편지는, 막 솟아나는 어린아이 이 같던 감잎이 점점 커져 어린 붕어만 해지고, 찬 서리 나무 끝에 까치를 위해 남겨 놓은 홍시 하나가 늦가을 햇살 속에 황홀하게 빛나다가 이내 하얗게 쌓인 눈에 덮이고야 마는 사계절의 자연을 오롯이 담았다.

그는 서른다섯의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 선생을 하면서 10년 넘게 문학을 ‘독학’했다.

오랜 세월 시집을 옆에 끼고 살았다. 참 많은 시를 베끼고 외웠다. ‘오! 환한 목소리, 내 발등을 밝혀주던 그 환한 목소리. 시(詩)였어!’

“박용래의 시가 오래오래 가슴에 남아요. 그의 시를 읽으면 적막한 고향 마을 밤늦도록 잠 못 들고 계실 어머님의 기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미당(서정주)의 시는 아직도 내 몸뚱어리를 징그럽도록 휘감아요. 세상과 짱짱하게 대결했던 김수영의 시는 한마디로 완벽해.”

그는 2000년 애송시들을 모아 시집(‘시가 내게로 왔다’)을 냈는데 40만 부가 넘게 팔려 출판계를 놀라게 했다. ‘시여 꽃잎처럼 날아가라. 사람들의 맨가슴 위로!’

그에게 시는 ‘차마 다하지 못한’ 옛사랑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의 시에선 아련한 곳, 정답던 그곳, 달이 뜨면 강으로 그대를 만나러 가던 그리운 그곳에 대한 설렘과 떨림, 아련함이 느껴진다.

‘연애시집’이란 제목의 시집도 냈다. 10번째 시집이다. “참 다행이지요. 아직도 내 몸의 어디, 세상의 어딘가에 푸른 콩잎 같은 시가 살아 있으니….”

참으로 휘발성이 강한 디지털 시대, 영상매체들이 무섭게 몸피를 불려가고 있는 이 시대에도 시는 살아남을까. 그 스펙터클한 즉물성(卽物性) 앞에서 사람들은 시의 은근함을 기다려줄까. 그래도 시인은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시를 끼적일 것이다. ‘나무와 새와 바람과 강과 산과 눈과 비가, 해가 바뀌고 때가 되면 틀림없이 오고가고 자라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 지상의 약속처럼’ 그렇게 시를 써나갈 것이다.

오래도록 그의 시에서 꽃은 꽃을 만나고, 사랑은 사랑을 만나고, ‘외로운 나’는 ‘외로운 나’를 만날 터이다.

“내 안에 이렇게 눈이 부시게 고운 꽃이 있었다는 것을 나도 몰랐습니다/몰랐어요//정말 몰랐습니다/처음이에요, 당신에게 나는/이 세상 처음으로/한 송이 꽃입니다….”(‘당신의 꽃’)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김용택 시인은▼

△출생〓1948년 9월 28일 전북 임실군

△학력〓1968년 순창농고 졸업△등단〓1982년 ‘21인 신작시집’(창작과비평사)

△수상〓김수영문학상(1986년) 김소월문학상(1997년)

△시집〓‘섬진강’(1985년) ‘맑은 날’(1986년) ‘연애시집’(2002년)

△산문집〓‘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1997년) ‘아들 마음 아버지 마음’(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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