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82>卷六. 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6월 13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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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범증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졸은 온몸이 불덩이처럼 되어 술상 앞에 쓰러진 범증을 자리에 옮겨 뉘고 인근에서 가장 용하다는 의자(醫者)를 불렀다. 진맥을 하고 고개를 기웃거리던 의자가 범증의 옷을 벗겨 온몸을 살피다가 등허리를 보고 흠칫했다.

“무슨 일입니까? 어떤 병이 난 것입니까?”

이졸이 그렇게 묻자 의자가 어두운 낯빛으로 대답했다.

“등에 종기가 났소(疽發背). 지금 한창 성이 나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워낙 살 깊이 자리 잡은 독창(毒瘡)이라 곪아도 쨀 수는 없소. 편히 쉬면서 약물로 다스려 종기가 삭아 없어지기를 기다려야 하오. 만약 이 독창이 터지는 날이면 그때는 편작(扁鵲)이 와도 살려낼 길이 없을 것이오.”

이에 이졸은 그 의자가 주는 약을 다려놓고 범증이 깨나기를 기다렸다.

범증은 다음 날 아침에야 겨우 눈을 떴다. 이졸이 다려둔 약을 올리며 간밤 의자가 남기고 간 말을 전한 뒤에 말했다.

“아무래도 잠시 이곳에 편히 쉬시면서 병을 다스린 뒤에 팽성으로 떠나야 될 듯싶습니다.”

범증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편히 쉬는 것이라면 고향에 이른 뒤라도 늦지 않다. 한낱 종기 때문에 갈 길을 멈춰서야 되겠느냐?”

그리고는 억지로 말에 올라 떠나기를 재촉했다. 이졸이 말렸으나 범증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다시 동쪽 팽성을 향해 길을 잡았다.

범증은 신열(身熱)에 덜덜거리면서도 그날 하루 길은 일없이 넘겨 해질 무렵에는 진류(陳留)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다시 말에 올라 길을 재촉하다가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옹구(雍丘)를 지날 무렵 갑자기 정신을 잃고 말에서 떨어졌다.

놀란 이졸이 범증을 객사에 뉘고 약을 달이며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깨어난 범증에게 다시 그곳에 머물면서 병을 다스리기를 권했으나 범증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수레를 구하여라. 종기쯤은 수레 위에서도 다스릴 수가 있다.”

그러면서 무엇에 씐 사람처럼 팽성으로 가는 길만 재촉했다.

다음날 하는 수 없이 크고 편한 수레 한 대를 빌린 이졸은 거기에 범증을 태우고 다시 동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번에는 며칠 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수레가 외황(外黃) 우현(虞縣)을 지나 탕군(탕郡)에 이르렀을 때였다. 낮의 여독(旅毒) 탓인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범증이 한밤중에 이졸을 깨워 말하였다.

“필묵과 흰 깁을 가져오너라.”

그리고 이졸이 시킨 대로 하자 병든 몸을 일으켜 날이 새도록 흰 비단에 무언가를 썼다. “내게 무슨 일이 있거든 이 글을 대왕께 전해다오.”

다음 날 새벽같이 시중드는 이졸을 부른 범증이 그 비단 두루말이를 건네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날이 밝기 바쁘게 길을 재촉했으나 끝내 팽성에는 이르지 못하고 소성(蕭城)에 못 미쳐 죽었다. 그때 범증의 나이 일흔 다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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