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산책]황선영/6명의 시위대

  • 입력 2005년 3월 7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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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AFP통신 지국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할 때 겪은 일이다. 대학생 데모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기자를 따라 현장에 출동했다.

쇠막대기와 화염병 등으로 무장한 다수의 시위 대열과 이에 맞서 강경 진압에 나서는 전투경찰. 아마도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굳어진 이미지이겠지만 ‘학생 운동’하면 나에게는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시위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내내 긴장감이 들었다.

하지만 시위대가 행진하며 나타나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예상과는 너무도 달리 ‘시위대’는 달랑 대학생 여섯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 학생은 전직 대통령의 딸이자 현직 정치인 여성의 사진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X표시를 한 피켓을 들고 있었고, 그 옆의 학생들은 정치적 항의를 표시하는 포스터를 들고 행진했다.

‘아니, 이게 무슨 데모란 말인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십 명의 사진기자들이 6명의 시위대를 에워싸고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이란! 너무나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엄숙하고 진지한 시위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시위대의 규모만 가지고 의사표시의 강도를 판단하려 한 나 자신이 오히려 문제가 아닐까.

우연히 목격한 그날의 그 ‘작은’ 시위는 인도네시아 미래에 대해 희망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해준 동시에 평소 가지고 있던 학생 시위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했다. 폭력적이고 정도를 벗어난 학생 운동은 문제지만, 사회의 불의에 침묵하는 것 또한 문제일 것이다. 잘못된 점, 미흡한 점을 바로잡으려는 젊은이들의 노력이 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황선영 이화여대 국제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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