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프리드먼]낙타가 하늘을 날 때

  • 입력 2005년 2월 23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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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민주화는 좋은 뉴스이자 나쁜 뉴스다. 마치 베를린 장벽 붕괴 때처럼 아랍의 독재정권들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뉴스다. 하지만 베를린과 달리 아랍 세계의 장벽 붕괴엔 유혈이 뒤따르고 있다. 이것은 나쁜 뉴스다.

나는 이라크에서 ‘민중의 힘’을 보고 너무나 기뻤다. 이라크인 수백만 명은 “투표하면 살해하겠다”는 바트당원과 지하드 전사들의 위협에 맞섰다.

레바논 반대파들이 들고일어나 시리아 정권을 손가락질하며 “자퀴즈(J'accuse·나는 고발한다)”라고 외친 사건도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그들은 야당 지도자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에 대항했다.

팔레스타인 선거도 대단한 사건이다. 대다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한 표를 행사해 온건파인 마무드 아바스를 자치정부 수반으로 뽑았다. 5선을 노리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 맞서 대선 후보로 나선 이집트 정치인들도 무시해선 안 된다.

모두 지금까지 아랍 세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들이다. 낙타가 하늘을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말 희한한 일이다.

‘아랍 거리’에 확실히 변화가 오고 있다. ‘아랍 거리’라고 하면 왕이나 독재자를 지지하는 군중이 모인 거리를 의미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전보다 더 많은 반미 테러범이 등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민주주의 지지자가 생겨났다. 이것을 ‘바그다드의 봄’이라고 부르자.

하지만 독재의 벽은 단 한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 머리를 자르는 이라크 저항세력처럼 사우디아라비아의 자살폭탄 테러범과 하리리 전 총리의 살해범은 모두 다음과 같은 신호를 보냈다. ‘아랍 세계의 옛 질서는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옛 질서의 총구에 꽃을 꽂으면 옛 질서는 당신의 손과 머리를 현장에서 날려버릴 것이다.’

근본주의자들과 독재자들이 폭력에 의존한다는 점은 곧 그들이 ‘아랍 거리’의 사상 전쟁에서 졌다는 뜻이다. 떠오르는 진보세력들은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아랍 세계는 아직도 시민의식이 약하다. 게다가 사원을 제외하고는 민간 사회기관이 거의 없다. 언론 자유를 경험한 적도 없고, 독재의 장벽이 무너졌을 때 자유시장이나 진정한 의회민주정치를 꾸려 나갈 능력도 부족하다.

피살된 하리리 전 총리는 50년간 황무지와 같았던 아랍 정치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만약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지난주 금요일 레바논의 유력지 ‘안 나하르’에 사미르 카시르 씨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기 바란다.

역사상 베이루트의 거리는 ‘아랍의 대의를 보호하기 위해’ 있었다고 카시르 씨는 썼다. 그러나 그는 하리리 전 총리의 장례식을 보고 난 뒤 아랍 민족주의를 새롭게 해석했다.

“오늘, 아랍 민족주의는 테러리즘 타도와 새로운 아랍 르네상스를 불러오기 위한 시민의 자유로 승화됐다. 장례식에 운집한 수십만 명의 참배객이 그것을 보여준다. 몇 년 전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는 단지 집권당이 동원한 군중만 모였다. 이번 하리리 전 총리의 장례를 계기로 베이루트는 새로운 아랍 민족주의의 중심이 됐다. 이 민족주의는 시민들의 자유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독재정권(시리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목이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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