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조기 집행은 경기 상황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상반기에는 경기가 나쁘지만 하반기에 좋아지는 국면이라면 같은 돈을 쓰고도 경기 오르내림 폭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더 나쁘다거나 상·하반기 모두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예산을 앞당겨 쓴다고 해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기 진폭을 크게 할 우려마저 있다. 예산 집행을 서두르다 보면 졸속과 낭비, 편법이 나타나기도 쉽다. 이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불행하게도 예산 조기 집행이 성공한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2003년과 지난해에도 하반기에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보고, 예산을 상반기에 의욕적으로 집행했지만 침체된 경기는 살아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2년 연속 이례적으로 경기부양용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에 이르렀다.
올해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정부의 경기 예측 및 대응 능력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국가재정도 축날 것이다. 이런 결과를 막으려면 정부는 경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하반기에 경기가 좋아졌으면 하는 주관적인 희망을 객관적인 예측인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정부는 민간경제의 활력이 살아나지 않는 한 재정정책을 아무리 동원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 재정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기업 활동을 억누르는 제도와 관행부터 먼저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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