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지오그래픽]경남 하동군 평사리 가을들판

  • 입력 2004년 9월 23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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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동그랗게 둘러싸인 소설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황금들판. 소나무 두 그루가 있는 둔덕은 옛날 이곳이 호수였을 때 섬이었던 곳이다. -사진제공 하동군청
산으로 동그랗게 둘러싸인 소설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황금들판. 소나무 두 그루가 있는 둔덕은 옛날 이곳이 호수였을 때 섬이었던 곳이다. -사진제공 하동군청
‘지리산에 미안하구나.’ 소설 ‘토지’의 박경리씨가 지난해 경남 하동군이 악양의 너른 들판과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평사리의 산기슭을 깎아 그 자리에 지은 최참판댁을 직접 와 보고서는 되뇌었다는 이 말. 대가의 풍모가 그대로 느껴지는 진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25년간 집필한 5부 16권의 대하소설 토지 전편에 흐르는 일관된 주제가 ‘생명’임을 간파한다면 이 짧고 소박한 말 속에 소설 토지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음을 알게 될 터. 그래서 다음달 9일 이 최참판댁에서 ‘토지문학제’와 함께 펼쳐지는 ‘악양 황금들판 축제’를 소개하는 여행기의 서두를 이 향기로운 작가의 말로 장식한다.

안방마님의 비단요처럼 깔끔하고 고아한 하얀 모래사장이 청산백운 모두 품고 쪽빛 바다 남해를 향해 느릿느릿 흘러가는 푸른 물 섬진강을 친구처럼 배웅하는 ‘하동포구 팔십리’(대중가요 제목)의 물가. 바다로부터 강을 거스르자면 경전선 철교와 250여년 생 노송 수백그루가 하얀 백사장을 뒤덮은 백사청송 송림을 차례로 지나고 이어 강 양안의 느릿한 산기슭이 배나무(하동군 하동읍)와 매실나무(광양시 다압면 매실마을)로 뒤덮은 풍경을 만난다. 좀 더 상류로 오르면 다압나루 입석나루 지나 산 사이로 너른 들판을 보게 된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바로 그 최참판댁 들녘이다.

○ 지리산의 한 맥… 엄마 뱃속 같은 편안함

백두산 향해 뻗는 대간의 시발이자 그 힘찬 기개가 응축된 거산 지리의 한 맥인 악양의 산악. 힘찬 포효를 위해 기지개 켜는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산세는 적당히 긴장되고 적당히 유연하며 적당히 힘이 들어간 정중동의 형상. 악양 들판은 그 산악 한가운데 있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산기슭에 들어선 최참판댁. 협문 너머로 보이는 별당채는 주인공 서희가 지내던 곳으로 안마당에 연못이 있다. -하동=조성하기자

갑갑함 답답함으로 무기력해질 수 있는 이 포위지형의 땅에서 생기 넘치고 엄마 뱃속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는 이유. 그것은 한쪽으로 툭 트여 숨통을 연 공간 덕분이다. 섬진강은 그 활로의 중심을 지나고 덕분에 배산임수의 풍수를 들먹이지 않아도 악양 들판에 서면 명당의 처소임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들판은 보기보다 훨씬 넓다. 80만평이나 된다. 그런데도 섬진강변 19번 국도와 연결된 평사리 진입로 초입에서 보면 황금들판은 그리 커 보이지 않고 농로자체도 좁아 뵌다. 그러나 가보면 다르다. 왕복2차로 도로 폭이다. 논은 사방에서 약간씩 층계를 이룬다. 계곡지형임을 보여준다. 이 들판 한가운데는 소나무 두 그루가 주변 풍경을 풍요롭게 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름붙인 동정호는 옆에 있다.

나당연합군의 일원으로 온 소정방은 백제를 치러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고 한다. 그는 산 한가운데 호수가 있는 풍경이 중국의 악양과 흡사해 이곳을 악양이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소나무가 있는 곳은 물 가운데 있던 섬으로 간척된 악양의 상전벽해급 변화를 보여주는 유일한 흔적이다.

최참판댁의 평사리 마을은 이 벌판이 내려다 뵈는 남향받이 산중턱에 있다. 마을은 고소산성 오르는 길로 오른다. 경사가 급한 산기슭의 조그만 마을. 거기에는 쌀 몇 가마쯤 나올 만한 조그만 다랑논(계단식 논)도 있다. 좁은 골목에는 옛 돌담도 그대로 있고 안마당과 대문간에는 앵두 자두 등 과실수도 한두 그루씩 있다.

○ 박경리 소설의 무대… 매년 문학제 열려

그런데 슬레이트 지붕이던 옛집이 최근 짚을 이은 초가로 변했다. TV드라마로 제작 중인 소설 ‘토지’의 촬영 때문이다. 벌써 1년째 촬영하고 있는데 곧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한다. 최참판댁은 이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하동군이 몇 년간 공들여 지은 최참판댁은 최근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옛날 대가처럼 자연스럽고 멋스럽다. 집안 마당에서 내려다 뵈는 악양 벌판과 섬진강, 그리고 주변 산악의 풍경이 좋고 말굽처마에 걸어둔 들문이며 안채와 사랑채를 가르는 내외 담, 들문 올린 방의 뒤창으로 내다뵈는 바깥 풍경, 사랑채의 대청에 앉아 시원한 바람 쏘이며 즐기는 노닥거림 등등…. 모든 것이 예스러워 절로 풍류가 느껴진다. 토지문학제는 여기서 열린다.

○ 여행정보

▽악양 황금들판 축제=유엔이 정한 ‘세계 쌀의 해’를 맞아 하동군이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농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행사. 다음 달 9일 오후 1∼5시에 누런 벼가 익어가는 악양의 황금들판 한가운데 마련한 특설무대에서 펼쳐진다.

최근 웰빙 팀을 두고 SBS TV드라마 ‘토지’의 촬영장이자 무대인 평사리 등 군내 곳곳을 중심으로 하동군을 ‘웰빙 휴양시티’로 만들고 있는 하동군의 첫 사업. 축제에 참가한 1004명(농촌을 사랑하는 천사)에게 햅쌀 500g(4인 가족 한 끼 분량)씩을 나눠준다.

▽문화행사=‘최참판댁 추수하는 날’을 주제로 삼아 연기자와 축제참가객이 한데 어울려 가을걷이를 하는 형식의 대형 퍼포먼스로 진행. 다음달 9일 정오 평사리공원 주차장에서 점심식사(재첩국·1000원)로 시작, 식후 농악대 따라 악양 들판으로 걸어 나가 무대행사를 관람한다. 국제행사에서 인기를 모은 정재만 교수(숙명여대)의 북춤과 학춤이 공연된다. 공연 후에는 황금들판에서 가을걷이 체험행사(벼베기 새끼꼬기 이엉엮기 등)가 민속놀이 한마당과 함께 펼쳐진다.

△토지문학제=오후 6시 최참판댁 △찾아가기=경부 혹은 중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 고속도로∼장수나들목∼19번국도∼남원∼구례∼섬진강변∼평사리 △문의=하동군청(www.hadong.go.kr) 웰빙팀 055-880-2378∼9

▽축제 참가하기 △오토 드라이빙 투어(1박2일)=내 차를 몰고 제공된 일정대로 찾아가 준비된 행사에 참여하는 방식. 지정숙소(지리산온천의 지리산가족호텔·50% 할인가에 제공·061-783-8100)에서는 건강학춤과 학 요가 및 명상 강의 제공. 이튿날은 천은사 관광 후 산채백반 식사 후 상경. 참가비는 1인당 2만원(초등학생 이하 1만원). 문의 (사)농촌체험휴양협회(www.goodwellbeing.net) 02-430-2686 △버스 패키지 투어(1박2일)=다음달 8, 9일 두 차례 출발(서울), 13만5000원. 진안 마이산∼승주 선암사∼지리산 가족호텔(온천)∼구례 산수유마을∼축제 참가.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하동=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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