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현장을 찾아서]<3>천도교 가리산수도원

  • 입력 2004년 7월 22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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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가리산수도원에서 수련생들이 주문을 외우고 있다. 천도교는 “너를 못살게 구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배우라”고 가르친다. -홍천=서정보기자
천도교의 가리산수도원에서 수련생들이 주문을 외우고 있다. 천도교는 “너를 못살게 구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배우라”고 가르친다. -홍천=서정보기자
21자(字)의 주문(呪文)을 암송하는 소리가 강원 홍천군 가리산 계곡의 고즈넉한 하늘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천도교의 가리산수도원. 16명의 수련생들이 가락에 맞춰 미동도 없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조동원 수도원장(78·여·사진)은 기자를 보자 큰절을 했다. 천도교에선 큰절이 인사법. 조 원장은 “천도교는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선생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21자의 주문을 외워 도를 깨닫는 수련법을 갖고 있다”며 “주문은 자기 안에 모셔진 한울님과 밖에 있는 한울님의 기운을 서로 통하게 해 자기가 한울님이라는 사실을 깨치게 한다”고 말했다.

수련생들은 1주일 동안 오전 4시반부터 오후 9시까지 식사와 휴식 시간을 빼고 21자 주문을 외우고 또 외운다. 이렇게 하면 하루 약 1만5000번을 반복한다. 수련 중에는 물고기 짐승고기 술 담배 등 어육주초(魚肉酒草)를 금한다.

2시간 동안 콩 볶는 소리처럼 이어지던 주문이 뚝 그친다. 큰 소리로 외우던 현송(顯誦)이 끝나고 속으로 주문의 뜻을 새기는 묵송(默誦) 시간이 이어진다.

남편과 함께 수련회에 참가한 오연순씨(38·대구 달서구 용산동)는 “얼마 전 묵송 시간에 남편과 그동안 무엇 때문에 싸웠나를 되돌아보면서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며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편에게 자꾸 뭔가를 요구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안에 쌓여 있던 불만이 하수구 뚫리듯 빠져 나간 느낌이라고 전했다.

조 원장은 “오씨가 한울님의 기운을 느끼는 수련의 첫 단계인 강령(降靈) 체험을 한 것”이라며 “자신에 대한 참회가 계속되면서 사람이 바뀌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105일 동안 독공(혼자 수련하는 것) 중인 한의사 조영제씨(32·인천 남동구 만수동)는 부인과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는 “주문은 마음을 이끄는 고삐와 같다”며 “화가 날 때나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주문을 외운다”고 말했다.

소규모 건설업을 하는 박남영씨(52·서울 강서구 화곡동)는 “주문 수련은 언제나 할 수 있지만 주문에 전념하기 위해 매년 여름과 겨울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천도교의 주문 수련은 강령→대강령→강화(降話·한울님과 대화하며 가르침을 받는 것)→자천자각(自天自覺·스스로 한울임을 깨닫는 것)→대도견성(大道見性·청정무구한 마음의 본래 자리를 깨닫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단순히 외우는 것에 불과한 듯한 주문이 왜 효과가 있을까. 조 원장은 “주문은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로 내 안의 한울님을 느끼게 해준다”며 “남의 체험을 백번 듣는 것보다 자신이 한번 해보면 주문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통(道通)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주문을 외워서는 안 된다”며 “‘착하게 살겠다’ ‘올바르게 살아보겠다’는 정신으로 정성을 다해 외우면 ‘도통’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덧붙였다. 033-435-2385

▽천도교 주문 수련법

‘지기금지 원위대강…’으로 시작하는 천도교의 21자 주문 수련은 특별한 호흡법이나 자세를 요구하지 않는다.

정성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는 것 외에 정해진 룰이 없다. 다만 21자가 제법 길어 단숨에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만의 리듬을 타는 것이 필요하다.

1주일간 집중하거나 한달 정도 꾸준하게 수련하면 대부분 강령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조동원 원장의 설명. 하지만 이 단계 이후가 어렵다.

강령 현상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는 ‘대강령’ 단계를 지나 ‘강화’ 단계에 이르면 그간의 성과에 자만하기 쉽다. 이럴 땐 주문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반복하면서 겸손한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조 원장은 “주문으로 시천주(侍天主)가 나를 잡으면 무엇을 해도 자신감이 생기고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남에게 자꾸 덕(德)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주장했다.

홍천=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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