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71>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6월 6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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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쓴 원숭이(7)

“파헤쳐라! 시황제의 능묘를 파헤쳐 보물들을 모두 꺼내라”

이번에도 항우는 한번 망설이는 법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진나라와 시황제가 한 일은 모두 악이고, 그걸 지우거나 부수는 일은 모두 선이 된다는 단순한 논리의 적용이었다.

여산(驪山)은 시황제가 즉위한 초기에 이미 능묘 터로 지정되어 일찍부터 치산(治山) 공사가 있었다. 그 뒤 천하를 아우른 시황제는 70만의 죄수와 역도(役徒)를 끌어다가 어마어마한 구리 외관(外棺)을 주조(鑄造)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묘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 땅을 깊이 파 거푸집 형태를 만들고, 거기에 구리물을 부어넣는 방식으로 웬만한 궁궐보다 더 큰 구리 곽(槨)을 땅 속에 만든 일이 그랬다.

그 구리 곽 안에는 함양의 궁궐을 본떠 만든 작은 궁궐들이 들어서고, 그 궁궐 안에는 죽은 뒤에 쓰일 것들이 가득 채워졌다. 곧 저 세상에서 부릴 백관(百官)과 일용으로 쓸 물품들, 그리고 사치로 늘어놓는 진기한 보물 같은 것들의 모형이나 실물이었다. 그리고 그 궁궐 가운데는 자신이 쳐 없앤 육국(六國)의 궁궐들을 본 딴 것도 있었다고 한다.

구리 외관 안의 궁궐 밖으로는 백천(百川)과 강하(江河)와 대해(大海)의 모형을 만들고, 거기에 수은을 부어 흐르도록 장치하였다. 천장은 천문(天文) 도형으로 장식하였으며, 바닥은 지리(地理)를 본떠 높고 낮게 만들었다. 구리 외관 안에 줄여 넣은 한 세상이었다.

그 뒤 시황제가 죽고 난 다음 능묘의 완성은 이세 황제 호해의 몫이 되었다. 호해는 시황제의 주검을 무덤 안에 누이고, 인어(人魚)기름 양초로 불을 밝혀 오래 꺼지지 않게 했다. 또 장인(匠人)을 시켜 구리 외관 문틀에는 절로 화살을 쏘아대는 궁노(弓弩)를 만들게 해 도적이 함부로 무덤을 파고 들어오는 걸 막았다. 그리고 구리 외관 겉으로 봉분을 두껍게 올린 다음 풀과 나무를 심으니 능묘가 마치 산과 같았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은 이세 황제 호해가 시황제를 거기에 묻은 지 아직 몇 년 되지 않는데도 능묘의 입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여산으로 간 항우의 장졸들은 무턱대고 이곳저곳을 파헤쳐 보았으나 헛수고만 했다. 그러다가 며칠이나 수소문한 뒤에야 어렴풋하게나마 능묘 입구를 아는 늙은이 하나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늙은이를 앞세우고 어렵게 능묘 안으로 들어간 항우의 장졸들은 왜 능묘입구를 아는 사람들이 그리 드물었는지를 이내 알 수 있었다. 두꺼운 구리 벽을 뚫고 들어가자 활과 쇠뇌의 화살비가 쏟아졌고, 겨우 그걸 피해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백골들이 무더기로 묘도(墓道)를 막았다. 무덤 속 일이 바깥에 알려질 것을 꺼린 호해가 산 채 무덤 속에 가두어버린 장인과 인부들의 시체였다.

거기다가 이미 인어기름 양초불이 꺼진 무덤 속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벽은 함부로 앞을 막았으며 길은 거미줄처럼 얽혀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무덤 속에 가득하다는 보물도 진짜보다는 모조품과 복제가 많아 값나가는 것은 드물었다. 시황제의 능묘가 진기한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재보가 아니라 갖가지 교묘한 장치와 설비 때문이었던 듯했다.

그 바람에 항우의 장졸들은 다시 항우에게 남의 무덤을 파헤쳤다는 비난만 보태놓고 별로 얻은 것 없이 물러나야 했다. 그래서 투덜거리며 시황제의 능묘를 떠나올 무렵 인근의 농부 하나가 와서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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