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캘린더]연극 ‘호텔 피닉스에서 잠들고 싶다’

  • 입력 2004년 6월 3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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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공연기획 모아
사진제공 공연기획 모아

촉망받던 시인 우영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어느 날 시인의 눈앞에서 아내는 자살하고 시인은 그 충격으로 절필한다. 시인은 스스로의 인생에서 ‘사라지기’(실종 또는 자살) 위해 20여년 전 참전했던 베트남 정글을 다시 찾는다. 말라리아와 이질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그는 시체처럼 거적에 싸여 버려진다. 그리고 죽기 직전, 그는 자신을 간호해 주는 낯모르는 여인을 만난다….

13일까지 서울 대학로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호텔 피닉스에서 잠들고 싶다’(오태영 극본·김영환 연출)는 6·25전쟁과 베트남전, 이라크전 등 지루하게 반복되는 전쟁의 상처를 위로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연극이다.

끊임없이 죽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영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여인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인과 살던 현지처였다. 그 여인은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았던 딸을 데리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딸은 ‘라이따이한’이라는 이유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임신 중이다.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삶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낙태를 시키려 한다.

과거 아버지의 월북으로 연좌제의 희생양이 됐던 우영은 모녀를 통해 낯선 땅에서 또 한번 벗어날 수 없는 ‘연좌의 사슬’과 마주치게 된다. 이 슬픈 현장에서 주인공은 마침내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갖는다. 자신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아온 베트남 모녀를 위해,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작가 오태영은 초기작인 ‘고구마’ ‘매춘’을 비롯해 ‘조통면옥’(통일익스프레스) ‘돼지비계’ 등 통일연극시리즈까지 찬반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작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를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겪은 바 있는 그는 거창한 관념적 언어보다는 지극히 인간적 측면에서 극을 풀어나간다. 화∼목 7시반, 금토 4시반 7시반, 일 3시. 1만, 1만5000원. 02-744-0300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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