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눈높이 육아]대소변 못가리는 아이

  • 입력 2004년 5월 23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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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철이의 별명은 똥싸개다. 엄마는 변비약도, 보약도 먹여보고 야단도 쳤지만 아이는 여전히 마지막 순간까지 참다가 팬티에 변을 묻혔다. 아이들은 냄새가 나는 철이를 놀리며 피했고, 철이도 학교 가기를 두려워했다.

처음 놀이치료실에 들어온 철이는 장난감에 관심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한 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과 노는 것을 재미있어 할 것이라는 기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을 잃은, 자아상이 심하게 손상된 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철이의 엄마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아이에게 사사건건 간섭했고, 아이는 혼나지 않기 위해 말은 잘 듣지만 눈치를 보는 소극적인 아이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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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치료에 익숙해지며 방어적인 태도가 누그러지자 철이는 치료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른이 아이를 혼내는 놀이만 되풀이하였다.

엄마가 억지로 떠 넣은 밥을 삼키지 않고 있다가 커튼 뒤에 몰래 뱉어버리던 철이는 대변 가리기 훈련을 할 때에도 몇 십분이고 유아용 변기에 앉아 있다가 엄마 몰래 커튼 뒤에 숨어 대변을 보았다. 너무 이르고 강압적인 대변 가리기 훈련은 ‘유분증’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혼나지 않으려고 더 혼날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엄마는 화가 나지만 실은 아이도 화가 나게 된다. 무서워서 표현을 못할 뿐이다.

유분증은 항문근육 조절능력의 발달지연, 동생이 생기거나 부모가 심하게 싸우는 등의 심리적 요인이 서로 작용해 생긴다. 신체적인 신호에 둔감한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아동들은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생기기도 한다. 심한 변비로 변을 보는 것이 너무 아팠던 경우에는 변을 참다가 실수를 한다.

입학 캠핑 등 낯선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변을 참아 변비가 생기고, 그 때문에 통증이 오고, 통증이 두려워 더욱 변을 보지 않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아이가 대변을 가리지 못할 때에는 먼저 변비를 유발하는 질병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신체적인 문제없이 대변을 못 가린다 해도 항문조절능력이 충분히 발달되는 만 4세가 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계획에 맞춰 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변을 잘 가릴 때 대변 가리기 훈련을 시작하여야 하고, 아이에게 창피를 주거나 야단을 치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다. 규칙적이고 고른 식습관과 일정한 시간에 배변을 하게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분노와 두려움을 풀어주는 놀이치료와 변비치료 및 배변 훈련, 그리고 엄마의 심리치료로 철이는 이제 더 이상 대변을 지리지 않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철이가 이제 스스로를 썩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소아신경정신과 전문의·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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