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57>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20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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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門의 잔치 ⑮

“좋다. 네 칼솜씨가 얼마나 늘었는가 보자.”

그 같은 항우의 허락이 떨어지자 항장(項莊)은 곧 칼을 뽑아들고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초나라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또 대개는 잘하였다. 항장도 초나라 사람으로 익숙한 춤사위에다 맹장으로서의 검기(劍氣)까지 더해지니 제법 볼 만한 검무(劍舞)가 되었다. 모두 흥에 겨워 손뼉을 쳐가며 구경했다.

하지만 장량은 애가 탔다. 진작부터 표정이 심상찮던 범증이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뒤에 일어난 일인 데다, 항장의 칼춤에서는 진작부터 써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 사이 한바탕 칼춤을 춘 항장은 이제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현란하게 검화(劍花)를 펼쳐냈다. 그런데 항장이 몇 발자국만 더 가면 패공도 한칼에 벨 수 있는 거리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원래 검무란 짝이 있어야 제대로 어우러지는 법. 내 비록 솜씨는 없으나, 조카와 짝을 이루어 흥을 돋워 보겠네.”

항백(項伯)이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허리에 찬 장검을 뽑아든 항백은 곧장 패공 앞으로 가 다가오는 항장을 맞았다. 그걸 보고 장량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패공이 당장은 죽지 않겠구나….)

하지만 그 순간에도 눈앞에서는 아찔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항장이 틈을 노려 패공에게로 칼끝을 돌리면 어느새 항백이 패공을 막아서서 항장의 칼끝을 밀어냈다. 그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자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차츰 얼굴이 어두워졌다. 흥겨워하며 보고 있는 것은 제 기분에 취한 항우뿐이었다.

항우도 범증이 몇 번인가 옥결(玉결)을 들어 보이며 눈짓하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때 이미 항우에게는 패공을 죽일 마음이 씻은 듯 사라진 뒤였다.

(흠씬 얻어맞은 개처럼 꼬리를 내리고 내 눈치만 보는 이런 위인을 죽여 무슨 이득이 있는가. 차라리 살려 내 사람으로 씀만 못하다. 그래도 제법 군사를 부릴 줄 아는 데다, 내 뜻을 미리 헤아려 입안의 혀처럼 굴 줄도 아니, 미욱한 무장(武將)들만 부리는 답답함이라도 덜어줄 것이다.)

속으로 그러면서 범증의 신호를 모르는 척했다. 그뿐만 아니라 범증이 나가 항장을 불러오고 항장이 칼춤을 청해도 항우는 그들을 의심할 줄 몰랐다. 내가 죽일 뜻이 없는데 누가 감히 패공에게 손을 댄단 말이냐 ― 그런 오만에서 비롯된 방심이었다.

거듭되는 패공의 위급을 보다 못한 장량이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자리를 빠져나온 장량은 곧 멀지 않은 군문(軍門) 쪽으로 달려갔다. 군문 밖에서 기다리던 번쾌가 다가오는 장량의 표정에서 무얼 읽었는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일이 어떠합니까?”

“몹시 위태롭고 다급하오. 지금 항장이 칼을 뽑아들고 춤을 추는데, 그 숨은 뜻은 오로지 패공을 해치는 데 있소이다. 실로 어찌해야 이 위급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러자 번쾌가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람처럼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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