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김영자/낮지만 당당한 ‘엄마의 학력’

  • 입력 2004년 5월 9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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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돌아온 고교 3년생 막내딸이 상담교사와 진로상담을 하다가 “아빠는 대졸이고 엄마는 고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말을 꺼냈다. 나는 언성을 높이며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했느냐고 다그쳤지만, 요즘 중고교생들의 부모 가운데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그랬다는 딸의 말에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고교를 졸업하지 못한 아빠 엄마를 가졌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태연하게 선생님께 거짓말을 한 행위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라고 일러 줬다. 대학은커녕 고교 입학도 하지 못했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이웃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해로운 일을 한 적도 없고 국민의 의무를 소홀히 한 적도 없다. 모범시민은 못 될지라도 나쁜 시민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일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앞으로 아빠 엄마의 학력을 부풀려 말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고 말해 줬다.

32년 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진학을 못하게 됐을 때, 나는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고교생이 된 동창들을 보면 피했고, 태어나 자랐던 섬마을도 싫었다. 그래서 도시로 나와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주경야독의 생활을 하다 생산 현장에서 중학교 과정을 익히느라 휴식도 잊은 채 열심인 청년을 만났고, 그의 학습 조력자가 되어 주다 부부가 됐다. 바쁘게 살면서도 정보나 지식의 습득에 소홀하지 않았다.

학벌이 구축해 놓은 세상의 성벽을 쳐다보면서 기죽기 싫었다. 나아가 사회의 편견에 대한 불만이 우리에게 긴 세월 주경야독의 정신을 간직하게 했을 것이다.

막내딸처럼 진짜 부끄러움은 낮은 학력이 아니라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루 속히 학력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무식은 부끄러움이 될 수 있을지라도 낮은 학력은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김영자 주부·광주 북구 운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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