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허영/'헌법 지키는 후보'를 찾자

  • 입력 2004년 2월 29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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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총선거는 주권자의 정치적 심판과 책임추궁의 기회다. 노무현 정부 1년간의 많은 실정과 극심한 사회혼란을 생각할 때 4·15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기가 꺾여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남의 탓과 엉뚱한 자화자찬이 심하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대안이 돼야 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내홍의 수렁에 빠져 있다.

따라서 국민은 난감하고 상실감을 느낀다. 한나라당 지지세력은 비전 없이 허둥대며 방황하는 당의 모습에 매력을 잃었다. 민주당 지지세력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분열의 틈바구니에서 선택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시민운동을 가장한 일부 단체들의 편들기 행태와 독선적 개혁 캠페인은 국민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2004년 대한민국 대의민주정치가 처한 혼돈과 미로(迷路)의 현주소다.

▼자유 없는 평등은 위험 ▼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검찰은 대선불법자금 수사의 칼자루를 쥐고 사실상 가장 영향력 큰 정치를 하고 있다. 야권의 편파수사 시비에 동조할 생각이 없는 국민의 눈에도 검찰의 편중수사와 치우친 수사결과 발표는 어딘지 수상쩍은 구석이 있다. 대통령 측근비리를 수사 중인 특검팀 내부에서 ‘수사방해’를 둘러싸고 불거진 내분과 사임사태도 괴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검찰과 특검의 수사는 과연 정경유착의 정치부패와 권력형 부정비리를 척결하라는 국민 성원에 화답하기 위해 후회 않을 혼신의 노력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트로이의 목마인가.

남은 4년을 버티기 위해서는 총선거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사실상의 총동원령 아래 법을 어기고 있는 노 대통령과 여당의 정치행태는 낡은 정치 뺨치는, 몰염치한 수준이다. 반미와 친북, 자주와 동맹, 성장과 분배,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 주류와 비주류, 경쟁과 평등 등 이분법적 분파개념을 양산하면서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분열과 이념갈등은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시장경제질서 등의 가치지표를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다. 3·1운동으로 세워진 대한민국의 가련한 자화상이다. 노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아리송한 그 ‘혁명’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시장경제질서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나마의 삶은 우리가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애써 지키고 가꿔 온 결과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런데도 진보의 머리띠를 두르고 분배의 주머니를 차고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만이 개혁이고 더 잘살 수 있는 길이라고 선동하는 일부 정치세력과 시민단체는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 자유를 악용하는 과격한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의 자유를 앗아가려는 위험한 상황이다.

자유를 버리고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는 자유도 잃고 평등도 실현하지 못한다는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평등은 자유 속의 평등, 자유를 전제로 한 평등일 때 의미를 갖는다는 진리를 망각하면 안 된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평준화 의식과 법 경시 풍조 및 좌경 이데올로기는 이미 위험수준을 넘어선 상태다.

▼‘법치-시장경제’ 지켜야 ▼

이번 총선거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참으로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지지하고 싶은 정당이 없고, 마음에 드는 후보자도 없고, 여당과 야당 모두 도토리 키재기 식의 부패집단으로 비치는 상황에서 선택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권을 포기해선 안 된다.

이런 상황일수록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의 기준은 단 하나다.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시장경제질서를 가장 잘 지키고 가꿔나갈 후보자가 누구인지 찾으면 된다. 정당과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그 밖의 장밋빛 공약은 모두 독약을 숨긴 당근이다. 총선거 후의 나라 운명을 걱정하는 국민일수록 이 헌법적 가치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자신과 가족의 생존보험에 가입하는 길이다.

허 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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