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장하준/株主포퓰리즘을 경계한다

  • 입력 2004년 2월 24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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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에 출판돼 1939년에는 전설적인 뮤지컬 배우 주디 갈런드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소설이 19세기 말 미국정치를 휩쓴 포퓰리즘(민중주의)의 시각에서 쓴 정치적 우화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시 미국에선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금본위제를 고집하며 통화증발을 가로막는 금융자본의 편협성 때문에 농촌이 몰락하고 도시에서는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정치운동이 ‘보통사람들’을 위해 금융시장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포퓰리즘이었다.

▼최근 기업경영 단기이익에 급급 ▼

포퓰리스트였던 작가 프랭크 봄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은 악의 무리를 이끄는 동쪽의 마녀로, 무력한 연방정부는 외화내빈의 존재인 오즈의 마법사로, 당시 피폐해 가던 미국 농촌과 도시의 실업자들은 허수아비와 깡통나무꾼 등으로 각각 의인화해 미국의 보통사람들이 느끼던 좌절감을 표현하려 했다.

기성체제의 문제를 잘 지적했지만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포퓰리즘은 곧 쇠락했다. 그러나 그 용어만은 계속 남아서, 단기적으로는 보통사람들을 위하는 듯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경제의 안정과 성장잠재력을 해쳐 결국 보통사람들을 해치는 정책노선을 묘사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그 포퓰리즘적 성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지금 포퓰리즘이 가장 위세를 떨치는 곳은 청와대나 국회보다도 오히려 많은 기업의 주주총회장인 것 같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인수합병이 자유화되면서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은 경영권에 대한 위협을 크게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의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세력은 기존 경영진이 과도한 투자로 이윤도 많이 못 내고 배당도 적게 해 ‘보통주주들’의 이익을 해쳐 왔다면서, 자신들이 경영권을 쥐면 주주가치 중심의 경영으로 보통주주들의 권익을 제고할 터이니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다.

여기서 문제는 소위 ‘주주가치 경영’이 장기적으로 기업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주가치를 올리는 가장 빠른 길은 대규모 감원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는 한편 설비나 기술개발 등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해 이익을 많이 올리고, 그렇게 얻은 이익 중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부분을 배당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이윤을 내면서도 투자와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주주가치 경영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영전략은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투자 여력을 줄이고 기술발전을 저해하며 종업원을 불안하게 만들어 노사관계도 악화시키는 등 기업의 경쟁력을 해치기 쉽다. 이렇게 당장은 보통주주들을 위하는 듯하나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려 그들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주가치 경영은 포퓰리즘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모두에 좋은’ 장기투자 눈돌려야 ▼

그런데 문제는 정치에서 보통사람들이 포퓰리스트 정권을 뽑으면 결국 자신들이 피해를 보는 것과 달리 보통주주들은 ‘주주 포퓰리즘’의 이득은 자신들이 챙기고 그 비용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주들은 포퓰리스트 경영진을 뽑아 단기적으로 배당 증대와 주가차익을 통해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반면 그로 인해 기업의 활력이 저하되면 언제든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다. 주주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기업의 활력이 저하돼 고용과 소득이 창출되지 않으면 대가는 그 회사의 종업원이나 거래업체, 그리고 모든 국민이 치르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의 경영전략 결정에서는 주주(shareholder)뿐만 아니라 모든 이해당사자(stakeholder), 나아가 국민경제 전체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업들과 국민경제는 미구에 주주 포퓰리즘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고려대 BK21 교환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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