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자토이치'…피 튀기는데 왜 웃기지?

  • 입력 2004년 1월 27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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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잔혹성에 슬랩스틱 코미디를 결합해 독특한 영화적 리듬을 선보인 기타노 다케시 감독, 주연의 영화 `자토이치`. 맹인 검객 자토이치(가운데 금발)는 거꾸로 칼을 쥐는 배검 기법으로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는 긴조 일당을 처치한다. 사진제공 프리비젼
피의 잔혹성에 슬랩스틱 코미디를 결합해 독특한 영화적 리듬을 선보인 기타노 다케시 감독, 주연의 영화 `자토이치`. 맹인 검객 자토이치(가운데 금발)는 거꾸로 칼을 쥐는 배검 기법으로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는 긴조 일당을 처치한다. 사진제공 프리비젼
《맹인(盲人) 검객 자토이치가 어느 날 민심 흉흉한 마을에 들른다. 그곳 사람들은 마을의 악당인 긴조 일당에게 착취당하고 있다. 자토이치는 마사지 실력을 발휘해 생계를 잇는가 하면, 엄청나게 발달한 청각으로 주사위의 홀짝을 알아맞히며 도박판을 휩쓴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 적을 베어버리는 검술의 달인.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게이샤가 된 한 자매를 대신해 자토이치는 긴조 일당을 처치하고, 긴조가 고용한 떠돌이 사무라이 하토리와 대결한다.영화 ‘하나비’ ‘소나티네’ 등의 기타노 다케시가 유혈 낭자한 검은 양복 대신 일본 전통 의상을 입었다. 일본 영화 ‘자토이치’는 그가 연출하고 주연한 첫 사극이다. ‘자토이치’는 일본에서 1962년부터 스물여섯 번이나 TV시리즈로 만들어진 인기캐릭터. 》

다케시는 자토이치가 맹인 검객이며 도박과 안마의 천재라는 설정만 남긴 채 기존 스토리를 모두 비틀고 해체하고 장난치고 조롱했다. 그는 핏빛 살기(殺氣)와 좌충우돌 코미디가 하나의 칼 날 위에서 절묘하게 춤추는 영화를 만들었고, 이 영화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이 영화를 보면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 해답 속에 바로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문법이 숨어 있다.

○ 왜 자토이치는 금발인가

‘자토이치’를 관통하는 다케시의 영화적 태도는 한 마디로 이런 것 같다. ‘아무렴 어때? 멋있으면 됐지.’

TV 시리즈 속 자토이치는 검은 머리에 평범한 전통의상, 갈색 지팡이 검을 들고 있다. 그러나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머리가 노랗고, 지팡이는 핏빛 빨강색, 기모노는 파란색이다. 심지어 눈동자마저 푸른색이다. 그의 전작 ‘돌스’에서 보듯 빨강 파랑 노랑의 강렬한 색채 미학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스타일이다. 그는 칼자루를 거꾸로 잡는 배검(背劍) 기법으로 적을 단번에 벤다. 칼을 두 번 휘두르는 경우는 적의 몸에 부등호(∠)를 닮은 독특한 문양을 남길 때뿐이다. 이는 쾌걸 조로의 칼자국(‘Z’자) 마냥 자토이치가 남기는 ‘즐거운 서명’이나 다름없다.

자토이치의 칼에 베인 악당들이 뿜어내는 핏줄기는 컴퓨터그래픽과 슬로우 모션을 활용해 마치 화려한 꽃처럼 ‘피어 오른다’. 피가 끔찍한 건지 아니면 아름다운 건지 헷갈린다.

○ 왜 탭댄스를 추나

마지막 장면에서 출연진은 한 바탕 탭댄스 축제를 벌인다. 다케시는 사극에 집어넣은 탭댄스를 통해 자신의 영화가 퍼포먼스와 해프닝으로 가득 찬 ‘즐거운 놀이’임을 주장한다.

그는 잔혹한 액션에 슬랩스틱 코미디를 뒤섞어 독특한 영화적 리듬과 스피드를 만든다. 난도질은 어찌 보면 리듬체조 같고, 농부들의 가래질과 망치질은 행복한 난타 공연처럼 보인다.

영화적 긴장과 낭자한 유혈이 극에 이르는 순간 ‘넘어지고 엎어지는’ 코미디는 슬쩍 고개를 내민다. 자토이치와 마주 선 떠돌이 검객 하토리가 교과서적 수순에 따라 자신이 자토이치를 공격하는 즐거운 상상을 머릿속에 그리는 장면은, 바짝 긴장한 관객의 뒤통수를 툭 치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뭐해? 이건 그저 영화일 뿐이야. 그냥 즐겨.” 칼을 뽑다가 옆 동료의 팔을 베고, 천정에 꽂혔던 칼이 떨어져 악당의 등에 꽂히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잔혹과 코미디를 친척지간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자토이치는 냉소하듯 표정 변화가 없다. 그저 ‘에헤헤헤’ 하는 싸늘한 웃음으로 이런 ‘영화적’ 상황을 즐긴다. 다케시에게 영화 속 캐릭터는 단 두 가지로 분류될 뿐이다. ‘재미있는 착한 사람’과 ‘재미있는 나쁜 사람.’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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