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세러피]'반지의 제왕…' '삶의 짐' 벗겨줄 원군 없나

  • 입력 2004년 1월 8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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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지의 제왕’ 3부작이 완결됐다. 현재 상영중인 마지막 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하 왕의 귀환)의 한 축에는 절대반지를 운반하는 프로도의 고난의 행로가, 다른 한 축에는 악의 상징인 사우론의 군대에 맞서 싸우는 미나스 티리스의 전투가 있다. 나란히 달리던 두 축은 3시간 반 동안 점점 가까워져서, 반지원정대의 목적지인 모르도르의 사우론 요새 문 앞에서 만난다. 둘의 겉모습은 전혀 다르지만, 둘 다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고 꺾을 수 없는 적을 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싸움이다.

모르도르로 반지를 운반하는 프로도는 태평스럽고 낙천적인 호빗족이며, 중간계를 구하겠다는 공명심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도 때때로 유혹에 시달린다. 뿐만 아니라 골룸과 샘 사이에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한다. 프로도는 ‘그 말고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임무를 짊어진 채 서서히 지쳐간다. 그러나 그가 결국 중간계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부정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를 안쓰러워하던 샘이 “그럼 그 반지를 벗어버리라”고 해도 단호히 거절한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왜 그런 일이 내게 생겼을까’ ‘왜 하필 이런 일이 내게 왔을까’하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반지의 신화가 가르쳐 주는 것은, 살면서 지고 가야 할 짐들이 ‘왜 하필 내게’ 온 이유를 묻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인생에서 내게 일어나는 어려운 일들, 이를테면 장애와 질병, 사랑하는 이의 죽음, 계획의 어긋남, 가난 같은 것들을 통제하고 피하기에 우리는 너무 무력한 호빗족 같은 존재다.

프로도인들 왜 자신이 반지를 운반하게 됐는지 궁금하고 답답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런 일들이 왜 내게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기에 우리의 지혜는 너무 짧고 보잘것없다. 때로는 나 자신의 욕망의 정체조차 불확실하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떨쳐내야 하는지도 잘 알 수가 없다. 단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든 그것을 종착점까지 지고 가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누구도 대신 운반해 줄 수 없는 반지 하나씩을 갖고 태어난 것과 다름없다. 이제 새해가 시작됐다. 또 하나의 반지가 주어진 셈이다. 새해 아침부터 서로에게 행복한 일만 일어나라고 기원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바람일 뿐이다. 차라리 한 해 동안 온갖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그저 쓰러지지 말고 모르도르까지 잘 지고 가라고 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그 동안 골룸의 꾐에나 넘어가지 말고, 샘처럼 좋은 친구들이나 많이 만들면서 말이다.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아라곤은 “나와 똑같은 두려움을 그대들의 눈빛에서도 본다”고 말한다. 그처럼 ‘왕의 귀환’이 주는 매혹은 ‘적을 꺾을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전투’에 임하는 병사의 심정, 평화로운 샤이어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삶의 부조리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데 있다. 그런 마음을 공감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서로의 동지가 될 수 있다.

그러니 혹시 아는가. 어쩌면 내가 힘겹게 산을 오르는 동안,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는 아라곤의 군대가 목숨을 내놓고 싸우며 나를 도와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또 한 번 힘을 내자.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 경상대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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