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권력이 움직인다]<10>경제정의 실천 시민연합

입력 2003-11-30 17:08수정 2009-10-1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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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창립된 ‘경제정의 실천 시민연합(경실련)’은 그 때까지 체제 밖에서 진행돼온 사회변혁운동을 체제 내 시민운동으로 전환시킨 한국 시민운동의 한 구심점이다. 경실련 창립 때부터 조직의 한 축으로서 경실련의 이념적 좌표를 잡아온 것은 교수 중심의 지식인 그룹이었다. 이들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적 엘리트주의,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 앨프리드 마샬의 경제기사도(騎士道) 정신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 발전의 기반이 된 사상을 근거로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시정하고 ‘정의로운 시민사회’의 기틀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두 개의 계급만이 존재하게 됐다. 하나는 주택 소유 계급이고 다른 하나는 무주택 계급이다….”

부동산 투기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불로소득으로 인해 다수의 국민들이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 1989년, 시민운동가인 서경석 목사와 박세일(서울대· 법경제학) 이각범(한국정보통신대·사회학) 강철규(서울시립대· 경제학) 이근식(서울시립대· 경제학) 이영희(인하대· 법학) 교수, 박인재 정성철 변호사 등이 경실련을 출범시켰다. 정치적으로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주의가 확산돼 가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들떠 있던 시기. 이런 때 ‘부동산 문제’를 주요 이슈로 잡고 나선 경실련 지식인들의 문제의식은 “대다수 국민이 평생 저축해도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질 수 없을 정도라면 이는 크게 잘못된 사회”라는 것이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가 강조했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근면한 노동과 자본의 축적을 존중하되 그것이 소수의 개인에게 집중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윤리학자였던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정의와 이성에 따라 노동, 생산, 교환, 분배가 이루어지는 시장구조를 만들기 위해 도덕적 엘리트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실련 초기 지식인 중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자들인 강철규 이근식 교수와 김태동씨(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 이른바 학현(學峴)그룹의 모토인 앨프리드 마셜(1842∼1924)의 ‘경제기사도 정신’ 역시 스미스의 도덕적 엘리트주의에 잇닿아 있는 것이었다.

●토지공개념부터 정치자금 투명화까지

경실련 소속 지식인들이 자임한 역할은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경제발전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정의로운 경제제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노동과 자본에 대한 존중이 탐욕의 단계로 넘어가도록’ 조장하는 원인은 부동산과 금융 부문에 있다고 봤다. 경실련이 출범 초부터 지속적으로 토지공개념 도입과 금융실명제 실시를 주장해온 이유다.

금융실명제는 1993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돼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비롯한 경실련의 안이 대부분 법에 반영됐다. 그러나 토지공개념에 관해서는 1989년 ‘택지소유에 대한 법률’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등 이른바 토지공개념 3개법이 제정됐지만 실질적인 시행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권영준 경실련 정책위원장(경희대 교수·경영학)은 “1997년 말 외환위기 극복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토지공개념 정책을 왜곡하는 건설경기 부양책이 시행될 때 방관했던 것이 잘못이었다”며 “최근 경실련에서 부동산 소유실태 공개, 토지 및 주택보유세 강화 등 토지공개념 도입을 추진하기 위한 방안들을 다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현 단계 한국사회의 현안으로 설정한 것은 정치개혁. 그러나 그 접근방식은 경제적이다. 이정희 정치개혁위원장(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은 “정치자금만 투명해지면 정치 개혁의 70∼80%는 이루어진다”면서 “그 핵심은 정치자금 실명제”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불법적인 정치자금 조성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정치자금의 주 공급원으로 지목되는 건설 및 부동산 부문에서 비자금이 조성될 수 없도록 제도를 마련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토지개발 이익에 대한 엄격한 관리 △최저 낙찰가제 △정밀한 감리 △선시공 후분양제 등을 통해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가던 비용을 주택 실수요자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구체적 대응방법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지식인들이 참여한 후발 시민운동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실련에 대한 비판도 적잖게 나오고 있다. 대안연대회의 사무국장인 조원희 교수(국민대·경제학)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만들려 한 경실련의 기본입장은 타당하지만 재벌개혁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한계에 부닥친 듯하다”고 평가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경실련 사람들 ▼

서울고교 동기동창으로 둘도 없는 친구였던 박세일 교수와 서경석 목사는 1989년 봄 한국 시민운동의 흐름을 바꿀 새로운 구상을 하게 된다. 당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이었던 서 목사는 기존의 사회운동이 체제 밖 변혁운동에서 벗어나 체제 내 운동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박 교수 역시 사회운동이 비판의 차원을 넘어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단계에 들어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박 교수는 이근식 강철규 교수 등 학자 그룹을 끌어왔고, 서 목사와 함께 동참한 신대균 유종성 박병옥 장신규씨 등 기독학생운동 중심의 사회운동가 그룹이 이들과 합쳐 ‘경제정의 실천 시민연합(경실련)’이 결성됐다. 경실련 출신 지식인들은 이후 정부 각계에 진출하며 전문가 지식과 사회운동 경험이 실제 권력으로 작동하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들어간 박세일(전 정책위원장) 이각범(전 상임집행위 부위원장) 교수를 시작으로 강철규 현 공정거래위원장(전 정책위원장), 김태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전 정책위원장),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전 지도위원), 김병준 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전 정책위 부위원장) 등이 모두 경실련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권영준 정책위원장은 “정부 요직에 들어갔던 경실련 출신 중 적어도 독직사건이나 비리에 관련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경실련 지식인들의 건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평했다.

현재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 목사는 “시민참여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정부가 권유할 때 ‘개인적’으로 참여해서 도와주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면서 “다만 시민단체로서 정치 감시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 경실련 자체는 정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실련 출신 지식인들의 참여는 행정과 정치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이장희 통일교육협의회 공동의장(한국외국어대 교수·법학),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경제학), 김석준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이화여대 교수·행정학)처럼 일부는 경실련 둥지를 떠나 다른 방식으로 시민운동을 확산해 나가고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경실련의 주역들이 26일 상임집행위원회 회의 참석차 모였다.

앞줄 왼쪽부터 김태룡(상지대 교수·행정학·조직위원장), 신철영(사무총장), 서경석(목사·상임집행위원장), 권영준(경희대 교수·경영학·정책위원장), 조대용(상임집행위원).

가운뎃줄 왼쪽부터 위정희(회원사업팀장), 윤순철(지방자치국장), 이의영(군산대 교수· 경제학·재벌개혁위원장), 이정희(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정치개혁위원장), 함시창(상명대 교수·경제학·경제정의연구소장), 박상기(연세대 교수·법학·시민입법위원장), 김동흔(협동사무총장), 위평량(경제정의연구소 사무국장), 고계현(정책실장).

뒷줄 왼쪽부터 문영성(숭실대 교수·컴퓨터공학·정보통신위원장), 조재영(인천경실련 집행위원장), 이강원(시민감시국장), 류중석(중앙대 교수·도시계획·도시개혁센터 정책위원장), 박용현(통일협회 민화회장), 이대영(사무처장). -김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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