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76…귀향 (10)

  • 입력 2003년 11월 25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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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악 동지는 얼굴은 슬픔으로 초췌한데 그 두 눈만은 초롱초롱한 기라예. 솔직히, 저는 여자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땀과 먼지로 딱딱하게 들러붙었고, 연지 하나 바르지 않은 얼굴은 햇볕에 타서 새카만데, 너무 아름다워서 제가 고마 넋을 다 잃었습니다.

하소악 동지는 이래 말했습니다. ‘남편은 늘, 건설과 파괴는 형식상 구별되지만, 정신적으로는 파괴 즉 건설이며,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고,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전투에서 목숨을 잃으면,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 싸우겠지요’라고예. 그러자 남선씨가 윤세주 동지를 쏙 빼닮은 날카로운 눈을 부릅뜨고,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기라예.”

강우홍은 막걸리를 들이켜고, 할 얘기를 다 했는지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보고는 빠진 한 가지를 덧붙였다.

“그라고 해방이 되고서야 안 일인데, 왜적의 연대장은 홍사익이라 카는 조선 사람이었습니다. 그 부대에는 조선 지원병들이 꽤 많았을 긴데, 왜놈이 조선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라고 수를 썼던지, 그들의 충성을 시험한 기지예. 홍사익은 전범으로 처형당했다 캅니다.”

이제 제 할 일은 다 했는가 봅니다, 우홍은 얘기가 다 끝났다는 것을 모두에게 전하기 위해 바닥에 놓인 모자를 들었다.

“…아무도 안 돌아오는 긴가베.” 할배는 불 꺼진 곰방대를 거꾸로 들고 재를 털었다.

“유골은커녕 머리칼 한 오라기 없으니…유품이 하나도 없으면…우째 제사를….” 작은할아버지의 손에 들린 사발에는 막걸리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데, 어머니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느라 미처 알지 못했다.

“김원봉 동지하고 윤세주 동지가 중심이 돼서 설립한 조선혁명 간부학교 2기생 문정일이가, 윤세주 동지의 생전에 만년필을 받았다고 하는데, 전투를 몇 번 치르면서 고마 잃어버렸다 캅디다. 유족 여러분에게 정말로 면목이 없다고 한탄을 합디다. 문정일이를 대신해서, 제가 이래 사과를 하겠습니다….”

“무슨…그런…말씀을…이래 찾아와 얘기해줘서 고맙습니다…안 그래 했으면…우리 모두 큰길에 나가서, 개선하는 여러분들 속에서 작은할아버지의 모습을 찾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얼매나 충격을 받았을지. 참말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비틀거리고 일어나 우홍의 오른손을 꼭 잡았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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