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고재종, '獨居'

  • 입력 2003년 11월 4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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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이 보지 마라

청둥오리 날아오르는 일

통통통통, 얼음강 차고 솟는

붉게 언 두발 보아라

활활활활, 된바람 불지피는

겨운 날갯짓이며

청청청청, 찬 하늘 치받아

푸르게 멍든 대가리 보아라

그마저 없다면

저 써늘한 허공을

무엇으로 채우겠느냐

-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시와시학사)중에서

꽤액…. 청둥오리 한 마리 짧게 된소리 내며 날아오르는 것 하찮은 일인 줄 알았죠. 차디찬 강물 속에 몸 담그고 있어도 천연 오리털 파카 안 추운 줄 알았죠. 맨발로 얼음장 딛고 다녀도 용하

구나 생각했죠. 찬 하늘 치받느라 푸르게 멍드는 줄 몰랐죠. 내 사는 일만 어렵고 힘든 줄 알았어요. 나는 무겁고 남들은 가볍구나 생각했죠. 세상 목숨붙이들 살아가는 일 가볍고 우스운 게 어

디 있으랴만 시인의 마음이란 저토록 오리 하나의 추위와 아픔마저 헤아리는 일이로구나. 나를 넘어 너에게로 가는 것이로구나.

겨울 강가, 까맣게 날아오르는 오리 떼도 이제 예사롭지 않군요. 무리 지어 날아도 저마다 홀로(獨) 머무는 (居) 외로움의 집이 있는 줄을 알겠네요.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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