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유가농산물 조합 한살림 성공비결

  • 입력 2003년 10월 1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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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과천 한살림 매장.

크기도 작고 부실해 보이는 포도 배 사과 양배추 참나물 등 300여 가지의 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벌레 먹은 자국이 있는 과일과 야채도 눈에 띈다.

그런데도 주부들은 앞 다투어 사간다. 경기 과천시 가구의 10%인 2500가구가 15평 크기의 이 조그만 매장의 회원일 정도.

서울 지역 한살림 회원들이 충북 충주시 노은면의 생산자 마을에서 배추벌레잡기 행사를 하고 있다. 한 회원이 아이에게 배추벌레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한살림제공

한살림은 1986년 강원 원주의 농부 몇 명이 유기농산물을 팔기 위해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조그마한 가게를 연 것이 첫 출발. 2년 뒤 생산자와 소비자가 출자금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 무공해 농산물을 사고파는 조합 형태로 변신했다.

전문 경영진이나 큰 자본은 없지만 급성장을 거듭해 7만8000명의 회원, 43개의 매장에 올해 매출이 4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회원의 65.3%가 서울에 거주한다,

▽신뢰가 최고의 자산=“한살림의 출범 자체가 ‘농약과 화학비료를 이용한 농사가 농부와 땅도 죽인다’는 각성 아래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단 한 번의 농약이나 화학비료 사용도 인정하지 않습니다.”(이남서 기획관리부장)

품질검증 단계도 엄격하다. 유기농 품질검증기관은 물론 생산자 조직, 중앙회, 소비자 대표 등 4단계의 품질검증 절차를 갖고 있다. 작년에는 동료 농부들이 문제를 제기, 경북지역의 한 농부가 영구 제명당했다.

작년에 밀려들어오는 소비자 회원 가입 요청을 한동안 거절한 것도 한살림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유기 농산물을 생산하려면 적어도 3년 이상 논과 밭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단기간에 생산자 조합원을 추가로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한살림의 경쟁력은 생태주의적 세계관에 기반을 둔 도덕성인 셈이다.

▽강력한 커뮤니티=한살림은 어떤 기업도 갖고 있지 못한 끈끈한 동호회를 갖고 있다. 전국 각 지역에 소비자모임이 결성돼 요리강습, 환경동아리 등 각종 동호회 활동이 활발하다. 주말이면 주부들은 가족의 손을 잡고 농촌회원을 찾아간다.

“밥상에 앉으면 애들이 이 쌀은 아산 아저씨가 재배한 것이고 이 고추는 강원 홍천 아저씨가 심은 것인 줄 알아요. 가족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먹는 느낌입니다.”(곽금순·42·서울 도봉구 방학4동)

“이 쌀이 어느 집 밥상에 올라가고 그 가족들 얼굴까지 아는데 작황이 좋지 않다고 내가 어떻게 농약을 칠 수 있겠소.”(이호열·49·충남 아산시 음봉면)

▽제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판다=한살림은 미국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회사를 떠올리게 한다. 할리데이비슨 구매자에게 오토바이는 탈 것만이 아니다. 구속받지 않는 삶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한살림 역시 그저 가게가 아니다. ‘생태적 삶’을 추구하는 농부와 소비자들의 접점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서형숙씨(45·서울 강남구 압구정동)는 한살림 회원으로 가입한 뒤 열렬한 환경주의자로 변신, 최근 한살림 활동과 두 자녀 교육이야기를 엮어 ‘거꾸로 사는 엄마’라는 책을 냈다.

“가족의 건강 때문에 시작된 관심이 결국 농부와 소비자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더군요.”

광고비를 쓰지 않는 한살림의 회원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열성 회원 덕분. 조합에서 일하는 상근 직원들도 돈보다는 한살림의 취지에 공감해서 들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24시간을 발로 뛰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한살림 회원이 1명 늘어날 때 농약과 화학비료에 찌든 땅 200평이 살아있는 땅으로 부활한다는 생각으로 일합니다.”(전경진·30· 매장사업팀)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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