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與野 주5일제 ‘꼼수 합의’

  • 입력 2003년 8월 20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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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을 거듭해 온 주5일 근무제 법안이 20일 노조측의 견해를 반영해 소수의견을 다는 ‘기묘한’ 형태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런 결과가 말해 주듯 그동안 여야가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문자 그대로 파행의 연속이었다.

우선 법안 처리 약속 시한이었던 19일 소위에서 벌어진 상황만 해도 그랬다. 이날 소위는 여야의 의견차로 아예 회의조차 열지 못했다.

한나라당 소속 위원들은 “정부안에서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는 기존 방침을 강조했고 민주당 위원들은 “정부안을 중심으로 하지만 일부 수정을 하자”고 맞섰기 때문이다.

환노위 위원들간에 공방이 오가는 동안 각 당에선 상대 당에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민주당 정세균(丁世均) 정책위의장은 당사에서 “우리 당은 정부안 중심으로 처리하자는 것인데 한나라당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는 “정부안대로 가기로 해 놓고선 민주당이 내부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며 떠넘기기 공방을 벌였다.

결국 19일 오후 한나라당 위원들과의 소득 없는 막후 협상을 마치고 회의장을 나선 신계륜(申溪輪·민주당)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은 지친 듯 “가능한 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토론하겠다”고 말했다.

회의장을 떠나는 한나라당 위원들도 한결같이 “여야 합의가 중요하다. 충분히 논의한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유독 ‘여야 합의’를 강조했다.

이같이 여야가 ‘합의’를 강조하는 쪽으로 돌아선 데는 민감한 사안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가 책임을 뒤집어쓸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20일이 되자 ‘여야 합의’는 더욱 강조됐다.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원형(李源炯) 제3정조위원장은 “의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나라당은 정부안대로 처리한다는 것이 당론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때 심사소위 위원인 전재희(全在姬) 의원이 나서 “환노위에선 여야 합의가 있어야 처리한다”며 또다시 ‘여야 합의’를 상기시켰다.

결국 법안은 정부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20일 오후 통과됐다.

이렇게 보면 여야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집착해 3년이라는 시간을 명분도 없이 낭비한 셈이 됐다. 마지막엔 ‘여야 합의’라는 ‘꼼수’까지 들고 나왔다. 노동계의 거듭된 파업과 재계의 반발 등 그동안 한국경제가 주5일 근무제 논쟁으로 본 경제적 손실을 정치권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대답이 궁금하다.

박민혁 정치부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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