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포석 人事의 세계]기업⑦-M&A갈등과 융화

  • 입력 2003년 8월 10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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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컴팩코리아를 합병한 한국HP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출신사 구분없이 서로에게 인사와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사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휴렛팩커드
지난해 컴팩코리아를 합병한 한국HP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출신사 구분없이 서로에게 인사와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사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휴렛팩커드
우리은행의 김모 차장(42)과 이모 과장(34)은 지금도 만나면 1999년의 사건이 떠올라 멋쩍은 미소를 나눈다. 그해 1월 옛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병된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은 합병과 동시에 서로의 직원을 교환 배치했다.

“한일은행에선 출근하면 지점장, 차장, 과장 자리에 차례로 가서 공손히 인사를 했어요. 그런데 한 직원(이 과장)은 인사도 없이 제자리에 앉더군요.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상업 출신이라 쉽게 혼을 낼 수도 없었죠.”(김 차장·한일 출신)

상업은행에선 옆자리 동료와 인사하는 것으로 끝내는 게 관례였다. 합병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이 일은 양 은행의 문화적 통합을 추진하던 ‘경영혁신단’에 알려져 공론화됐고 결국 ‘앞으로는 한일은행처럼 인사를 하자’는 지침이 내려졌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도 인수합병(M&A)이 본격화되면서 직장인들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옛 국민은행 입사 10년차인 박모 대리(33)는 2년 전 옛 주택은행과 합병한 뒤 다시 신입직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업무 관련 용어부터 달라졌고 무엇보다 업무의 기본인 전산시스템이 바뀌었어요.”

박 대리는 “옛 국민은행에선 컴퓨터에 입력하는 거래코드가 4자리였는데 주택은행은 10자리”라며 “거래코드를 외우고 있으면 ‘10년차 신입사원’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본사의 합병에 따라 이뤄진 한국휴렛팩커드(HP)와 컴팩코리아의 합병은 컴팩 출신의 강모씨(32)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했다.

“합병 전 컴팩에선 미국 본사와 직접 업무를 논의하는 등 빠른 의사결정에 익숙했는데 HP에 오니 모든 일을 일일이 지역본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번거롭죠. 장시간 이어지는 HP의 회의 문화도 힘들었어요.”

▽밥그릇싸움과 줄서기=문화차이가 정서적 문제에 불과하다면 자리다툼은 생존의 문제다. 줄어든 자리나 요직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둘러싼 줄서기도 필연적이다.

신한지주와 합병을 앞둔 조흥은행 노조가 차기 행장 문제를 놓고 갈등을 일으킨 것도 같은 이유다. 조흥은행 피가 조금이라도 더 섞인 사람을 희망하는 것.

합병금융기관인 국민은행, 굿모닝신한증권, 하나은행은 아직도 2개의 노조를 가지고 있다. 노조위원장직을 한쪽에 양보할 경우 보호막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합병한 굿모닝신한증권리서치센터의 두 부서, 기업분석부와 투자분석부의 반목은 여의도 증권가에서 입방아에 오를 정도. 기업분석부의 영업대상은 외국인이나 기관투자가와 같은 큰손 고객. 주로 시가총액이 큰 알짜 종목을 분석한다. 반면 투자분석부는 지점 영업을 지원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잘한 종목을 다룬다.

문제는 기업분석부는 옛 굿모닝증권 출신으로, 투자분석부는 굿모닝증권의 전신인 옛 쌍용증권과 신한증권 출신으로 대부분 구성됐다는 것.

“다른 증권사와 달리 두 부서는 공조가 없죠. 그 대신 옛 굿모닝증권 출신에 대한 반감과 피해의식으로 쌍용과 신한 출신들이 똘똘 뭉쳤어요.”(한 애널리스트)

▽융화와 화합의 노력=성공적 합병을 위해 ‘너와 나’의 구분을 없애려는 것도 이 때문. 우리은행은 합병 전 상업, 한일의 인근 점포끼리 적어도 2번씩 근처 맥줏집에서 모임을 갖도록 의무화했다. 합병과 동시에 노조를 통합한 것이 점차 출신의 구분을 잊는 데 도움을 줬다는 평가. 그 덕분에 요즘은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한빛 출신”이라고 답한다.

한국HP는 최근 직원들간 인사하기, 대화하기, 칭찬하기 등의 사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직원들은 상호투표를 통해 조직융화 모범직원을 선출한다. 중간 간부의 경우 부하직원들과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화했는지가 중요한 평가기준이다.

한국HP 최준근 사장은 “M&A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통합된 회사 가치와 정보, 그리고 성과 분배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며 “시너지효과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물리적 결합에 이은 화학적 융합은 쉽지 않다. 합병으로 생긴 서울신탁은행이 국내 합병의 대표적 실패 사례로 손꼽히는 것도 이 때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은행의 갈등은 합병 1세대가 소멸된 다음에야 해소됐다.”(옛 서울은행 출신)

성공적인 M&A를 위한 체크포인트
구분 체크포인트
조직 적합성 평가-조직 구조, 시스템, 인적 자원의 차이 분석-M&A 후 확보하려는 시너지효과에 대한 정의
문화 적합성 평가-두 회사 조직원들의 철학, 가치, 신념 체계 비교분석-조직원 저항 등을 고려한 통합 속도 조절
종합 분석-M&A 저항 조직원과 방관 조직원에 대한 교육 및 의견 교류-계획과 실행의 차이점 평가 및 재조정
도움말:LG경제연구원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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