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한총련, 합법화 이전 변화부터

  • 입력 2003년 4월 16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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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변신’이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한국의 학생운동에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한총련은 지금대로는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대학 사회에서도 점점 소수세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집계에 의하면 올해 총학생회장을 선출한 전국 178개 대학 가운데 운동권이 당선된 곳은 65곳, 비운동권이 당선된 곳은 서울대를 비롯한 113곳이다. 운동권 단체 중 한총련에는 60개 정도의 대학 총학생회가, 전국학생회협의회(전학협)에는 나머지가 각각 가입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과거 한총련과 한국의 학생운동이 동일시되던 시기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이다.

▼친북노선 수정이 당면과제 ▼

한총련은 친북 노선을 걷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총련 재판을 맡은 변호사가 최근 어느 인터넷 언론과의 회견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는 “한총련 핵심간부들은 주체사상에 매우 호의적이며, 북한에서 나오는 문건과 방송, 신년사를 활동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 다음 “북한 당국이 신년사를 통해 올해에 6·15 공동선언 이행과 청년 학생들의 교류를 통해 통일운동을 활성화하자고 주장하면 한총련의 사업계획도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사업, 통일 대회, 국보법 투쟁 등을 실천사항으로 잡는다”고 밝혔다. 다른 사람도 아닌 피고인측 변호인의 말이어서 실로 경악할 일이다.

이 같은 증언은 한총련이 북한 당국의 대남 노선을 그대로 추종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올 1월 광주고법의 한총련 10기 의장 김모씨에 대한 항소심 변론을 맡았던 변호인이다. 공판 과정에서 대학 교수 등 여러 명이 피고인측 증인으로 나와 한총련의 이적성을 부정했지만 재판부는 김씨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따라서 최근의 한총련도 98년 대법원이 이적단체라고 판결하고 정부가 강제로 와해시키기로 결정했을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상태다.

지난주 한총련 11기 의장으로 당선된 연세대 총학생회장 정재욱씨의 ‘한총련 발전적 해체’ 발언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한총련을 무조건 합법화하자고 요구해 국민을 오도한 사회 지도층의 무책임성이다. 한총련을 자신들의 우군 내지 전위조직으로 이용하려던 친북 단체들의 합법화 요구는 그렇다고 치고, 명망 있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한총련을 무조건 합법화하라고 요구한 것은 이번 신임 한총련 의장보다도 판단력이 어둡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이들 사회 지도층은 한총련 합법화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한총련이 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혁신파’로 알려진 정 의장은 선거공약으로 반전 반미와 민족공조 및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내걸고 이번 4·19를 기점으로 해서 미국대사관과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전선(戰線)’을 형성하겠다고 밝혔다. 공약대로 강행할지 지켜볼 일이다.

정 의장이 한총련의 발전적 해체를 밝힌 것은 학생운동의 단결과 운동권 비운동권을 망라한 조직의 확대 개편에 있다고 한다. 과연 한총련 주도의 그런 작업이 가능할지도 속단할 수 없지만 앞으로의 학생운동은 친북 노선 수정과 정치 일변도 지양, 그리고 운동 내용의 다양화와 운동 주체의 다양화가 당면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전국적 거대 단일 조직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제 학생운동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정부, 성급하게 나서지 말길 ▼

그런데 한총련은 스스로의 변신의 시한을 1년 내지 1년 반으로 잡고 있다. 한총련을 둘러싼 내외의 사정을 감안할 때 과연 진정한 변신이 이루어질지 지켜보아야 한다. 10기 의장 김모씨도 작년 4월 “한총련의 합법화와 대중화 및 민주화를 위해 모든 대학생 단체를 포괄하는 한국민주학생연합(민학련)을 연내에 만들어 한총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그 후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고 말았다. 정부는 한총련 합법화 문제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내지 말아야 한다.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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