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야구계의 ‘바지바람’

  • 입력 2003년 3월 21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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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팔’ 최동원의 부친 최윤식씨가 최근 타계했다. 기자는 고인을 잘 모르지만 그의 ‘야구 열정’에 대해선 선배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최동원의 아버지 최윤식’이 아니라 ‘최윤식의 아들 최동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인은 유명한 존재였다. 최동원이 30대 초반까지 ‘파파보이’라는 놀림을 받은 것도 그래서였다.

고인은 공 던지는 것만 빼고 최동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신했다. 일본에서 야구책을 구해와 직접 가르쳤고 아들이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도록 메리트 시스템까지 썼다. 이런 그가 아들을 제치고 연봉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고인은 88년 2월 롯데의 연봉 동결에 맞서 전년도 8910만원보다 90만원이 오른 9000만원을 주장하며 박종환 당시 전무에게 사과문을 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감정싸움은 88년 최동원을 반 시즌이나 미계약 선수로 남아 있게 한 초유의 사태를 낳았다. 더욱이 고인은 그 해 8월10일 후견인을 자청해 한국프로야구선수회의 창설을 주도했고 아들은 회장, 자신은 고문으로 추대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선수회는 구단의 집요한 방해 공작으로 끝내 무산됐고 최동원은 그해 겨울 삼성으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한 뒤 제몫을 못하다 2년 후 은퇴하고 만다.

그러고 보니 국내 프로야구에는 ‘치맛바람’보다는 ‘바지바람’이 거셌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동원과 쌍벽을 이뤘던 ‘국보급 투수’ 선동렬의 부친 선판규씨는 동네 씨름선수 출신답게 연봉협상 때마다 고래심줄같은 뚝심을 자랑했다. 87년 재계약 때 종이 위에 깨알같이 쓴 옵션 4개항을 내걸었던 그는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무보수 계약을 하는 대신 광주팬을 무료입장시켜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80세의 고령인 그는 이제 건강이 좋지 않지만 아직도 아들의 재산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

현대의 전신인 태평양 시절 인천야구장 앞에 ‘홈런슈퍼’라는 잡화점을 열었던 최창호의 부친 최영규씨도 소문난 스타 아버지. 그는 민간요법인 벌침으로 태평양 선수들의 근육통 치료를 도맡고 나서 구단 물리치료사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밖에 두산 투수 차명주의 부친 차봉수씨는 강남에 세꼬시 전문횟집을 운영해 동료 선수와 야구인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한 때 심판원들 사이에 ‘세꼬시 존’이 있다는 장난섞인 말이 나돈 것은 이 때문이다. 비교적 조용한 박찬호의 부친 박제근씨는 ‘팀61’의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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