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재건축부담금 갈등

  • 입력 2003년 2월 12일 18시 56분


코멘트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잠실 주공4단지 얘기다.

이 아파트는 17평형 2130가구로 구성돼 있다. 재건축 대상이다. 지금은 딱 한 가구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이주했다. 조만간 헐리기 때문이다.

집값은 4억6000만원 안팎. 한 평에 2700만원이 넘는다. ‘재건축 투자’의 모범답안으로 통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 아파트 주민 중 일부가 최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사업이 모두 무효라는 것이다. 재건축 조합을 상대로 법원에 ‘재건축결의무효확인청구소송’까지 냈다. 이대로라면 지금까지 해온 재건축 사업을 원점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판이다.

발단은 조합원 부담금에서 불거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지어 이주하려면 조합원들이 건축비 일부를 추가로 내야 한다. 34평형을 원하는 이들은 약 6500만원, 43평형은 2억1700만원, 50평형은 3억7000만원이 필요하다.

17평형 서민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담되는 돈이다. 43평형을 배정받으려면 서울 강북의 아파트 한 채 값을 더 내야한다. 비대위는 조합이 시공사와 결탁해 무리한 금액을 책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만간 주민 총회를 열어 조합집행부에 대한 재신임과 부담금 수용 여부, 시공사 교체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조합은 조합대로 주민들의 반발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있다’는 반응이다. 어떻게든 조합원들을 설득해 사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재건축 모범답안의 현실이 이렇다. 하물며 이런 저런 이유로 사업이 삐걱거리는 현장의 속사정은 말해봤자 뻔하다. 재건축 투자를 누워서 떡먹기 정도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집값이 저절로 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작년에는 실제 그랬다.

하지만 주택시장이 안정되고 정부의 규제 강도가 더해지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투자를 잘하는 이들이 ‘돈을 얼마나 벌지를 생각하기 전에 리스크를 어떻게 줄일지를 고민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