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1년간 연극 8편 릴레이 연출 '열혈청년' 채윤일씨

  • 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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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한기자
/전영한기자
요즘 중견 연출가 채윤일씨(58)는 밤낮없이 연극에 열정을 불사르던 ‘열혈 청년’으로 되돌아갔다. 매일 오전 2시에 일어나 담배 한 갑을 꼬박 태우며 다섯 시간씩 희곡 작품을 다듬고 있다.

“20일째 안 갈아입고 있다”는 잿빛 트렌치코트와 안에 입은 양복은 연습실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인 그의 ‘이불’ 겸 외출복이다. 그리고 이런 생활을 올 1년 내내 해야 할 판이다.

3일부터 막을 올린 이상의 ‘날개’를 시작으로 그는 1년간 무려 8편의 작품을 ‘릴레이 연출’한다. ‘엘렉트라’(3월), ‘무진기행’(4월), ‘진땀 흘리기’(4월), ‘산씻김’(6월), ‘까리귤라’(7월), ‘영월행 일기’(9월),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1월).

이 중 ‘무진기행’ ‘엘렉트라’ ‘까리귤라’ 등 3편은 신작이고 나머지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첫 작품인 ‘날개’는 1976년 그가 만든 극단 ‘세실’의 창립 작품이자 26년 만에 재공연하는 작품이라 의미가 크다. ‘날개’는 아예 대학로 극장에서 12월31일까지 1년 내내 공연한다. 그러다 보니 4월에는 ‘날개’ ‘무진기행’ ‘진땀 흘리기’ 등 그의 작품 3편이 동시에 대학로 무대에 오른다.

“한동안 지원금 받으면 연출하고, 못 받으면 쉬기도 했죠.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제 내가 피 튀기며 연극할 수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2년 정도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빚내서라도,죽어라고 연극했던 시절처럼 해보려고요.”

실제로 그는 올해 공연을 위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여의도 24평 아파트를 담보로 1억5000만원의 빚을 얻었다. 이 돈은 1년간 ‘날개’를 공연할 대학로 극장과 다른 작품을 올릴 극장을 얻는 데 다 썼다.

그는 스스로를 “영원한 아마추어”라고 했다. 하고픈 작품은 연출료를 뒷전으로 미루고라도 꼭 해내고야 만다. 배우도 개런티 얘기부터 꺼내면 그 순간으로 끝이다.

“요즘 배우들은 ‘올챙이 화법’이 많아요. 대사를 시작하면 ‘대가리’만 있지 뒤로 갈수록 무슨 소린지 알 수 없고…. 그러면서 출연료부터 운운하는 배우는 안 써도 되지요, 뭐.”

1972년 극단 ‘산울림’ 연출부에 들어가 성인 연극을 공식적으로 시작했지만 그는 그 이전에도 10년간 아동극을 했다. 첫 작품은 1962년 ‘백설공주’. ‘말괄량이 삐삐’ ‘별’ ‘마지막 수업’도 호평을 받았다.

장남이지만 “연극하려거든 결혼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던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생들의 ‘평생 후원’을 받으며 40년을 후회 없이 연극 외길을 걸어 왔다.

그런 만큼 그는 요즘 연극에 대한 불만도 많다. 무엇보다 “문학의 향기가 없다”. 그는 “연극은 언어를 통해 상상해야 하는데 문학성이 사라지다 보니 오락성 강한 넌버벌극이 판치는 것 아니냐”고 씁쓸해 했다. 그가 후배들에게 던지는 ‘쓴소리’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연극은 재능이 아니라 인품으로 하는 겁니다. 문학적인 토양이 인품을 만들고, 인품은 무대에서 저절로 보이기 마련이죠.”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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