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살아야 회사가 산다]현대자동차

  • 입력 2002년 11월 19일 16시 56분


‘현대 영어 캠프’에서 아이들과 원어민 강사가 영어로 얘기하고 있다./사진제공 현대자동차
‘현대 영어 캠프’에서 아이들과 원어민 강사가 영어로 얘기하고 있다./사진제공 현대자동차
《‘사설 캠프는 비싼 데다 아이만 혼자 보내기가 걱정되고….’ ‘요즘 웬만한 초등학생도 해외 연수를 떠난다는데 대책 없이 있기도 조바심 나고….’ 자녀들의 방학과 함께 찾아오는 부모의 고민을 회사가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대자동차는 이런 직원들의 요구 사항을 수렴해 2000년 겨울 방학부터 직원 자녀 가운데 중학교 1, 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현대 영어 캠프’를 열고 있다. 일주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경기 고양시 고양연수원에서 일주일간 합숙을 하며 영어를 배운다. 같은 해 여름부터는 여름 방학마다 직원 자녀 가운데 초등학교 5, 6년 생을 대상으로 3박 4일간 수영 강습, 공장 견학, 댄스 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현대 어린이 씽씽 캠프’도 열고 있다.

이 회사의 자녀 캠프 프로그램은 사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영어 캠프 시행 첫회인 2000년 여름방학에는 170명 모집에 68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 4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사원들의 요구로 회사는 △2001년 여름 2회 실시, 230명 모집 △2001년 겨울 3회 실시, 480명 모집 △2002년 여름 겨울 4회 실시, 650명 모집 등으로 시행 횟수와 모집 인원수를 늘여가고 있다.

“회사가 사교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한 자녀 캠프 프로그램 덕에 일할 때 더 힘이 난다” 는 현대자동차 장영식 과장, 이명중 차장, 송갑식 과장(왼쪽부터)이 서울 양재동 본사 쇼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김동주기자

첫 회 추첨에서 고배를 마신 끝에 올 여름 외동딸 이지연양(14·서울 가락중 2년)을 영어 캠프에 ‘입성’시킨 현대자동차 가락지점 장영식 과장(여·43)은 “아이가 지난해 미국 시애틀로 다녀온 어학연수 때보다 만족스러워했다”고 말했다.

“보름간 자녀가 일곱명이나 되는 현지 중산층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시켰어요. 미국 문화를 익히는 데는 큰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단기간에 영어를 공부가 아닌 생활로만 접하다보니 성적 향상 효과는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비용도 300만원이나 들었고요.”

무료에다 회사가 주최하는 캠프라 믿을만하다는 매력 때문에 신청했지만 첫 날 일정을 마친 딸은 휴대전화로 ‘엄마, 짱(정말) 힘들어. 선생님도 무섭고…’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오전 7시 기상에 쉴 새 없이 진행되는 수업이 부담스러웠나봐요. 영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긴장도 됐던 것 같고요. 하지만 셋째날부터는 너무 재밌다면서 전화도 안 하더라고요.”

영어 캠프에는 레벨테스트를 거친 비슷한 실력의 학생 12∼14명이 한반이 되는데 외국인 교사 1명, 원어민급 한국인 교사 1명에 영어 전공 대학생 보조교사 1명 등 교사 3∼4명이 배치된다.

현대·기아 상품기획총괄본부 상품기획1팀의 이명중 차장(43)은 “딸이 캠프에 다녀온 뒤 영어 말하기 듣기 수행평가에서 만점을 받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타지 아이들, 외국 선생님과 부닥치면서 영어에 대해 큰 동기 부여가 됐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아이가 창원에서 학교를 다니다보니 서울 아이들에 비해 외국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정말 적어요. 캠프를 통해 서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정보도 얻고 자신감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 방배지점의 송갑식 과장(43)은 얼마 전 남매의 사교육비로 월급의 3분의 2가 고스란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이민까지 결심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 방학기간이나마 부모의 사교육 부담을 덜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애사심이라는 게 이럴 때 저절로 우러나는 게 아닌가 싶고….”

송 과장의 아들 영걸군(12·서울 남성초 6년)은 올 여름, 경기 파주시 파주연수원에서 열린 3박 4일 과정의 ‘현대 어린이 씽씽 캠프’에 참가했다. 이 캠프는 본사, 울산, 아산, 남양연구소, 전주 등 5개 지역단위별로 신청자를 접수해 지역 특성이나 여건에 맞게 별자리 관찰, 갯벌 체험, 레고 조각으로 미래의 자동차 만들기, 컴퓨터 교육 등의 과학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예전에는 ‘아빠는 큰 회사에 다닌다’고 알던 아이들이 캠프에 다녀와서 ‘아빠는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해서 으쓱했습니다.”

자녀 교육 캠프에 아이를 보낸 사원들의 만족도는 만점에 가까웠다.

인재개발팀 김종근 팀장은 “‘일하기 좋은 직장’이란 조직원의 가족과 가정을 배려하는 곳을 의미하며 이는 애사심으로 이어진다. 사원 자녀들도 미래의 고객 내지는 차세대 조직원이 될 수 있는 만큼 이 같은 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의미 있는 투자로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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