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고대와 현대의 동거 '튀니지'

  • 입력 2002년 11월 7일 17시 45분


튀니지를 여행하면서 만날 수 있는 사막 마을.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이 마을은 지금 새로운 관광지가 되고 있다./사진제공 월드콤
튀니지를 여행하면서 만날 수 있는 사막 마을.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이 마을은 지금 새로운 관광지가 되고 있다./사진제공 월드콤

튀니지를 여행하는 즐거움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지혜로운 여인,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견줄 만하다.

길게 뻗은 국토를 따라 여행하면서 사막의 유목생활부터 고층빌딩이 들어선 현대도시, 카르타고에서 비잔틴에 이르는 고대문명,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제국주의시대 유럽의 흔적까지 다양한 문화 코드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튀니지의 뿌리인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고대국가들의 치열한 전투를 생생하게 현실로 불러온다. ‘시간을 넘나든다’는 기대를 안고 한니발과 사막의 베르베르족을 만나는 좁은 문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사막과 해변을 잇는 삼각루트

‘튀니스의 압구정동’으로 비유할만한 시디부사이드의 카페촌 모습./사진제공 월드콤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이슬람국가들로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가 포함된다. ‘해지는 서쪽’이라는 뜻) 3국 중 하나인 튀니지는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곳이다. 직접 연결편이 없기 때문에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을 경유해 2∼3시간 다시 비행기로 이동해야 한다. 수도는 튀니스. 오랜 식민지배를 거쳐 경제부흥기를 맞고 있지만 아직도 튀니스 시가지는 1960∼70년대 서울의 모습이다.

튀니스의 대표적인 박물관은 1882년 건립된 바르도박물관이다. 마그레브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박물관이자 세계 최고의 모자이크 수집관이다. 3층 건물의 벽과 바닥이 온통 모자이크로 장식됐다. 이곳을 기점으로 대통령궁이 있는 마을인 시디 부 사이드와 구 시가지인 메디나를 중심으로 시장과 거리 풍경을 살펴보는 것이 튀니스 관광의 주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튀니지 관광의 진정한 매력은 남쪽 도시 토제르에서 시작되는 유목민 마을 탐방에 있다.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주거지를 갖고 있는 베르베르족과 오아시스, 사막의 토굴 여관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그 어떤 여행의 즐거움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다.

튀니지를 제대로 여행하려면 먼저 지도를 펼쳐놓고 수도인 튀니스를 중심으로 삼각형을 그리는 게 좋다.

우선 튀니스에서 비행기로 1시간가량 떨어진 내륙지방 토제르로 남하한다. 공항이 있는 토제르는 육로로는 4, 5일이 걸리는 수도와 다른 도시들을 쉽게 연결시켜 주는 곳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사막과 유목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마을들인 네프타, 체비카, 타마르자, 마트마타를 차례로 살펴본 후 동쪽에 있는 해변의 번화한 휴양도시로 이동하는 삼각행로가 튀니지 여행의 황금코스다.

유럽인들은 비포장도로가 많은 이 도시들을 여행하기 위해 주로 렌터카(랜드로버)를 이용한다. 운전사와 가이드가 동반된 패키지형 랜드로버 일주상품도 마련되어 있다. 자유인이라는 뜻의 ‘아마지그’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더 좋아하는 베르베르족은 오아시스 마을인 체비카와 유목민들의 마을인 타마르자, 마트마타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중 마트마타는 ‘스타워즈 I’의 촬영지였다. 거친 사막을 배경으로 제다이로 선발된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마트마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박하잎차와 시원한 물수건

튀니지는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을 가든 이방인들을 환대하는 편이다. 거친 사막을 달려온 손님을 맞는 첫 번째 예의는 목 안까지 칼칼해지는 박하잎 차와 시원한 물수건대접. 호텔이든 가정집이든 예외가 없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도랑을 타고 이어지는 오아시스 마을인 체비카도 그렇게 손님을 맞는다. 오아시스 마을은 대부분 규모가 작고 우리네 민속마을처럼 관광지화되어 있다. 오아시스 마을을 생계수단으로 삼는 베르베르족조차 좀 더 문명화된 인근도시에 생활터전을 두고 있다. 오아시스에선 관광객들을 상대로 터번을 감는 법에 5달러, 사막에서 채집한 전갈을 유리병에 담아 기념품으로 1∼10달러에 판매한다.

이런 마을들을 이동하면서 사막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토굴여관에서의 하룻밤이다. 사막의 먼지를 피해 땅을 파고 그 안에 굴을 만들어 객실을 이룬 것이 토굴여관이다. 평지에서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2, 3층 규모로 객실이 만들어져 있다.

언뜻 보아서는 흙으로 만든 감옥같다.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한 육중한 나무문이 창문이 없는 객실마다 달려있기 때문이다. 객실 안으로 들어서면 카펫이 깔려있고 침대가 놓여있다. 여관에 따라 전기가 들어오는 곳도 있다. 늘 섭씨 20도 정도의 온도가 유지되는 토굴 안은 쾌적하다. 바깥의 모랫바람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맨발로 땅 위를 걷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하다. 식사는 튀니지안 샐러드와 바비큐. 무엇보다도 한밤중에 횃불을 들고 바라보는 사막의 하늘이 환상적이다. 하늘을 가득 메운 별 때문이다.

오래 전 무역을 위해 도시를 이동하던 사막의 상인들이 잠시 말이나 낙타의 숨을 고르고 잠을 청했던 이 여관은 지금은 또 다른 관광상품이 되어 여행자들을 재우고 있다.

베르베르족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마을인 타마르자에서는 한꺼번에 약 1000명의 관광객들을 모아놓고 독특한 이벤트를 벌인다. 북과 나팔로 흥을 돋우며 옛 베르베르족 전사들의 싸움을 재현하는 것. 터번을 감고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전사들이 맹렬한 속도로 말을 타며 모래땅을 가른다. 말에 거꾸로 매달려 달리거나 여성을 옆에 차고 달리며 납치극을 표현하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같은 이 행사는 마치 버킹엄궁의 사열식처럼 훌륭한 볼거리다. 사막 깊숙이 들어가서 베르베르족을 만나는 것보다 편리하다. 그러나 베르베르족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교직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그래서 욕심많은 여행자들은 사막여행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낙타나 말을 타고 사막 깊숙이 들어가면 유목생활을 하는 베르베르족들을 만날 수 있다. 흙벽으로 지은 집에서 잠을 청하고 천막으로 주거공간을 이루는 그들은 여전히 옛날 방식대로 생활하는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다. 베르베르족의 실제 주거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하루 이상의 일정이 필요하다.

삼각형의 오른쪽 꼭지점에 해당하는 휴양도시들은 지중해에 잇닿아 있다.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만들어진 호텔이나 빌라 등이 밀집된 수스, 모나스티르가 그곳이다. 중동개발이 한창일 때 한국 근로자들이 잠시 쉬어가던 곳인 제르바섬도 있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발달했고 어디든 메디나같은 구시가가 존재한다. 고대의 실크로드 상인들이 이방에서 가져온 듯한 신기한 물건들이 여전히 사고 팔리는 시장에서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시간으로 온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된다.

마을의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처럼 새로운 혼돈에 사로잡히게 되는 튀니지. 그 신비한 혼란은 튀니지를 벗어날 때까지 강렬하게 이어진다.

●튀니지 가는 길

1. 교통편

우리나라에서는 직항편이 없다. 유럽의 대도시에서 수도인 튀니스로 이동한다. 파리에서 튀니스까지는 2시간20분이 걸린다. 튀니스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는 철도가 놓이지 않아 렌터카나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사하라사막에 가까운 토제르 공항까지는 튀니스에서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사막관광에는 랜드로버가 필수 교통수단이다.

2. 기온: 우기는 12월에서 1월, 6∼10월은 여름철로 평균 기온 25도,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을 때도 있다. 겨울인 10월말∼5월이라 해도 평균 기온 13도 전후의 지중해성 기후이다.

3. 쇼핑정보: 세계적인 모자이크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나라답게 타일이나 접시에 다양한 문양이 새겨진 도자기들이 많다. 또 튀니지의 상징적인 기념물인 새장과 수제 카펫도 사 볼 만한 품목이다.

2. 튀니지 여행정보

튀니지 관광청(tourismtunisia.com),

주한 튀니지 대사관(02-790-4334)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영광과 파멸의 흔적 생생한 카르타고

멀리 튀니스만이 바라다보이는 비르사 언덕에는 패망한 카르타고의 유적들이 남아 역사를 증언한다./사진제공 튀니지대사관

북아프리카 한쪽에 자리잡은 작은 국가로만 생각되는 튀니지. 그러나 역사의 베일을 벗겼을 때 그곳은 고대 로마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한니발의 카르타고(Carthage)’로 우뚝 솟아 오른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다룬 한니발 전쟁편은 바로 튀니지의 역사다.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카르타고시에서 옛 카르타고의 영광과 파멸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튀니지의 역사는 기원전 9세기경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카르타고 제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무역과 상업에 능해 기원 전 3세기 전반까지는 지중해 무역의 패권을 장악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도를 펼쳐놓고 들여다봐도 카르타고는 지중해 통상의 요지다. 현재의 수도 튀니스에서 북쪽으로 15㎞ 정도 떨어져 튀니스만에 자리잡고 있는 카르타고는 스페인과 아프리카를 잇는 거점도시로서의 이점을 충분히 누렸을 것이다.

베르베르족의 전투장면을 재현한 퍼포먼스. 사막여행의 백미다./사진제공 튀니지대사관

훌륭한 항해기술과 풍부한 자원, 뛰어난 상업술에 기반을 둔 카르타고의 확장을 견제하던 로마는 기원전 264∼146년 3차례에 걸쳐 카르타고와 전쟁(포에니전쟁)을 했고 그 과정에서 카르타고는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시칠리아섬을 획득한 로마의 집정관 카토는 화의 중에도 줄곧 카르타고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폈는데, 원로원회의 때 아프리카산 무화과를 쳐들어 보이며 “이것은 뱃길로 사흘밖에 걸리지 않는 땅에서 난 것이다. 카르타고를 멸망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 로마의 집념 때문인지 불운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2차 포에니전쟁 때 전쟁사에 길이 남을 만한 승전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는 패배했고 로마에 지중해 지배권을 고스란히 넘겨줘야 했다. 100여년이 넘는 긴 전쟁을 치르며 카르타고의 저력에 전율한 로마인들은 마지막 전쟁을 통해 카르타고의 주민들을 몰살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노예로 팔고, 무려 17일 동안이나 도시를 태웠다. 더 이상 사람들이 살지 못하도록 소금까지 뿌렸다고 한다. 카르타고의 번영이 완전히 재로 변하고 만 것이다.

지금의 카르타고 유적지는 사실 그 전쟁의 잔해일 뿐이다. 일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고 그 중 트페 묘지, 포에니 거리, 군항터 등이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다. 현재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며진 트페 묘지에는 작은 무덤이 여럿 남아 있다. 이는 고대 페니키아의 신(神)인 바알 등에게 바쳐진 갓난아기의 무덤. 당시엔 제사에 갓난아기를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곧 멸망할 나라의 국민들이 무엇을 그렇게도 염원했던 것인지….

카르타고는 높이 약 13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대도시였고 그 안에 무려 40만명의 인구가 거주할 만큼 번영했던 곳이다. 그 흔적을 살펴볼 만한 곳으로는 비르사(Byrsa)언덕에 자리잡은 국립카르타고박물관(겨울철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개관)을 꼽을 수 있다. 이곳에는 옛 카르타고의 유물과 사적 자료, 장신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튀니지 사람들은 옛 카르타고 위에 뉴카르타고를 건설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오래 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카르타고라는 말 자체가 페니키아어로 ‘새로운 마을’인 ‘카르트 하다시트(Kart Hadasht)’의 변형이니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카르타고박물관이 있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튀니스만의 아름다운 풍경과 멀리 보이는 수도 튀니스의 현대적인 건물들, 요트로 가득 찬 항만의 모습에서 기원전 146년에 사라진 카르타고의 비극적 종말을 가늠해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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