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현대백화점- 신세계 분할하는 까닭은

  • 입력 2002년 10월 10일 18시 00분


현대백화점, 2일부터 6거래일 연속 주가 하락. 시가 총액 3분의 1이 단 6일 만에 사라졌다. 9, 10일 이틀 동안 주가 하락폭이 20%에 육박한다.

신세계, 이달 초부터 단 하루도 주가가 오른 날이 없다. 10월 들어 시가총액 4분의 1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아무리 증시가 침체기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는 푸념이 나올 만하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 등 백화점 실적은 오히려 좋아질 것”(굿모닝신한증권 박성미 애널리스트)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무색하다.

특히 외국인투자자들이 주저 없이 두 회사 주식을 팔아치운다. 올해 초 54%에 육박하던 신세계의 외국인 지분은 최근 48%대로 급락했다.

7월 중순 37%를 넘던 현대백화점 외국인 지분도 단 석달 만에 28%대로 주저앉았다.

두 회사에 남들이 모르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증시에서는 두 회사의 지배구조 변화에 의심의 눈초리를 둔다. 올해 초 광주신세계를 따로 상장시킨 신세계, 최근 기업 분할을 선언한 현대백화점 모두가 ‘2세 상속을 위해 회사를 쪼개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다.

두 회사는 이런 소문에 대해 펄쩍 뛴다. 광주신세계 상장이나 현대백화점 기업분할 모두 효율적인 경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반론이다.

▽현대백화점〓현대백화점은 지난달 30일 주주총회를 열고 회사를 현대백화점과 현대H&S 2개로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백화점 사업은 현대백화점이 맡고, 여행 호텔 등 나머지 사업은 현대H&S가 맡는다.

분할비율은 8 대 2로 전체 자본금 가운데 현대백화점이 80%, 현대H&S가 20%를 가져간다.

이 결정이 난 뒤 현대백화점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외국인이 심하게 주식을 팔아치웠다.

증권가의 의심은 이렇다. 현대백화점 정몽근 회장이 두 아들에게 회사를 나눠주기 위해 둘로 쪼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정 회장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장남 지선씨는 회사 부사장을 맡고 있고 차남 교선씨는 유학 중이다.

현대백화점은 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분할 비율이 5 대 5나 6 대 4가 아니고 자그마치 8 대 2다. 도대체 어느 아버지가 두 아들한테 재산을 8 대 2로 불공평하게 나눠줄 생각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또 상속을 하고 싶으면 현대백화점 계열사 18개를 그냥 두 아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면 되는데 왜 굳이 본사를 쪼개 나누겠느냐는 것.

기업 분할은 상속과는 전혀 무관하며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신세계〓올해 2월 새로 거래소에 상장된 광주신세계에 투자자의 눈길이 모아진다. 왜 많은 지방백화점 가운데 굳이 광주신세계만 독립법인으로 만들었을까. 또 왜 광주신세계를 따로 증시에 상장했을까.

물론 계열사를 따로 독립시켜 상장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광주신세계가 관심을 끄는 것은 이 회사의 대주주가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장남 신세계 정용진 부사장이기 때문.

정 부사장은 1998, 99년 광주신세계 증자에 참여해 45억원을 투자, 이 회사 지분을 50% 넘게 갖고 있는 대주주가 됐다. 반면 정 부사장이 갖고 있는 신세계 본사 지분은 5%가 채 안 된다.

먼 훗날 두 회사가 합병한다면 50%가 넘는 정 부사장의 광주신세계 지분이 신세계 주식으로 바뀐다. 결국 광주신세계는 정 부사장의 ‘신세계 지분’을 높이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는 의심이다.

신세계도 이런 소문에 대해 강력히 반발한다. 정 부사장이 광주신세계 증자에 참여한 것은 당시 광주신세계가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갈 정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것.

‘두 회사를 훗날 합병해 정 부사장의 신세계 지분을 높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대해서도 두 회사가 합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회사의 주장이다.

▽어떻게 평가할까〓투자자들은 두 회사의 지배구조 변화에 대해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실적에 비해 주가 하락폭이 큰 것은 투자자의 이런 심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두 회사의 변화를 색안경을 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백화점에 가려있는 여행과 식품 사업부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을 나눴다”(현대백화점) “다른 지역 연고의 백화점에 반감이 큰 광주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광주신세계를 독립 법인으로 만들어 따로 상장했다”(신세계)는 해명도 일리가 있다는 평가.

동부증권 김호연 애널리스트는 “한국기업 가운데 상속을 위해 편법을 쓴 회사들이 너무 많아 비슷한 문제만 나오면 외국인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두 회사의 변화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지 지금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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