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세계/자산관리사]"돈관리는 제게 맡기시고"

  • 입력 2002년 9월 15일 17시 52분


▼씨티은행 서울지점 송훈부장▼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위치한 씨티은행 서울지점. 명칭은 지점이지만 사실상 일반은행의 본점과 같은 곳이다. 고객 중에는 부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구 오른편에 있는 영업점에 들어서면 시중은행 창구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고객이 많지 않아 창구가 붐비지 않는다. 고객은 창구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직원과 1대1로 업무를 처리한다. 고객의 비밀 유지를 위해 창구는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진짜 부자들만 이용하는 ‘서울 씨티골드센터’가 나타난다. 씨티골드센터의 고객은 금융자산 2억원 이상인 사람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사람들도 고객 명단에 포함돼 있다.

송훈(宋勳·35·사진) 부장은 씨티은행 서울지점에서 일하는 5명의 자산관리사 가운데 한 명이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남 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전공 분야는 재무와 회계.

99년 간부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현재 200여명의 고객이 맡긴 1200억원이 넘는 돈을 관리하고 있다. 씨티그룹이 자체적으로 치르는 자산관리사(RIC) 자격증을 2000년 취득했다. 이 자격증이 없으면 씨티은행에서는 고객 투자상담을 할 수 없다. 씨티은행의 창구 직원은 금융상품을 팔 수는 있지만 투자상담은 하지 못하게 돼 있다.

자산관리사에게는 2,3평 크기의 전용 개인사무실을 준다. 송부장의 사무실은 유리창과 유럽풍 오크가구로 구성돼 특급호텔같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둥근 테이블 위에는 모니터가 360도 회전하는 컴퓨터만 한 대 놓여 있었다.

전화 벨이 울리자 송부장은 고객을 확인한 뒤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난 자산 투자내용(포트폴리오)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고객님이 맡긴 37억원은 주식 채권 예금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현재 투자수익률은 몇%입니다. 상세한 투자내용은 직접 찾아 뵙고 설명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먼저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는 하루 평균 5∼7명의 예약 방문고객을 맞아 상담하고 10∼15명의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재산 포트폴리오 현황과 시장동향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한 주에 2,3명의 고객은 직접 찾아가 설명한다.

처음 오는 고객을 맞으면 우선 투자성향부터 파악한다. 나이, 투자경험, 향후 소득, 투자위험 수용 정도, 총 자산 중 투자가능 자산액, 투자목표 등이 자료가 된다. 그에 따라 투자상품을 추천한다.

씨티은행은 미국 유럽 아시아 신흥시장의 유가증권이나 주식에 투자하는 해외뮤추얼펀드 150여개를 투자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고객이 안정성향이면 채권이나 예금 비중을, 수익성향이면 주식이나 뮤추얼펀드 비중을 높인다.

“대부분의 고객은 50대 이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고 여유시간이 많지 않은 분들입니다. 따라서 투자내용의 핵심을 간략하고 조리있게 설명해야 합니다. 고객들이 다방면에 관심이 있어 틈만 나면 음악 미술 등에 대한 전문지식도 쌓아야 합니다.”

그는 고객과 상담할 때 네가지 철칙을 지킨다. 첫째 예상수익률을 말하지 않는다, 둘째 과거에 이랬으니 향후에도 이럴 것이라고 예측하지 않는다, 셋째 시장 움직임을 단정하지 않는다, 넷째 환율 변동성과 투자 위험을 고객에게 알린다.

고객이 수익을 얻고 고맙다고 말할 때면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기대만큼 수익을 못얻거나 손해를 보면 괴롭다.

“자산관리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습니다. 다른 금융회사들도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어 앞으로 경쟁이 치열해질 겁니다.”

그는 오전 6시경 집을 나선다. 회사 부근 헬스센터에서 운동과 샤워를 한 뒤 8시50분경 사무실에 도착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직원끼리 15분 정도 전화로 정보를 교환하는 ‘콜 콘퍼런스’. 이어 영문으로 받는 외국 금융시장 동향과 살로먼스미스바니(SSB)의 투자분석 내용을 살핀 뒤 업무를 시작한다. 오후 4시반 공식 업무가 끝나면 고객별 투자자산 수익률 등을 분석 정리하고 시장정보를 파악한다. 미국 자산관리사(CFP) 자격을 얻기 위해 공부도 해야 한다. 매주 두세번은 동문모임 등에 참석해 새 고객을 유치하는 활동을 벌인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인터넷으로 미국 주식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며 출발하는지 살펴본다.

“늘 긴장하고 새로운 정보를 익혀야 하는 직업이어서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상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관리도 잘 해야지요.”

송부장은 자산관리사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격이 밝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야 하며 세계시장 동향을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자격시험 보려면…고객관리등 4과목 시험 합격률 20%선▼

금융자산관리사(Financial Planner) 이애란(李愛蘭·사진) 삼성증권 Fn아너스청담점 과장은 한 종목의 주식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모 아니면 도’식의 투자시대는 가고 자산을 관리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돈이 많은 고객일수록 다양한 상품에 나누어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려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

증권사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이과장은 2000년 4월 실시된 첫 금융자산관리사 자격시험에 합격했으며 투자상담사 1,2종 자격증도 갖고 있다.

“금융자산관리사 자격증이 있으면 고객에게 신뢰감을 줄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를 종합해 투자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들의 관심분야가 넓어 부동산 세법 등 더 많은 분야를 배워야지요.”

고객에게 유가증권에 대한 투자를 권하거나 재산 운용에 대해 상담하려면 반드시 금융자산관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증권업협회 주관으로 6회 자격시험이 11월17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서 치러진다. 5회 시험까지 7만6307명이 응시해 1만5674명이 합격했다. 금융회사에서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시험을 보지만 합격률은 20.5%로 높지 않다. 시험과목은 고객관리업무, 자산관리업무, 법률 및 세제, 자산운용 및 전략 등 4개 분야.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 점수를 얻어야 합격한다. 한 과목이라도 40점 미만이면 불합격.

황락성 증협 자격시험관리팀장은 “재테크에 대한 관심과 유가증권 부동산에 대한 투자수요가 늘어 금융자산관리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하나은행은 자산관리사 사관학교"▼

‘사람 장사’나 다름없는 프라이빗 뱅킹(PB)을 하려면 유능한 프라이빗 뱅커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

하나은행이 금융권에 프라이빗 뱅커를 ‘공급’하는 사관학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일찍부터 PB를 도입해 이론과 실전 경력이 풍부한 인력이 많기 때문.

이달초 계좌 평균 잔액 10억원 이상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PB팀을 출범시킨 조흥은행에는 메릴린치 증권을 거쳐온 윤태경 팀장 등 5명의 하나은행 PB출신이 있다. 박경재 조인호 씨는 씨티은행을 거쳤고 유남현 박장배씨는 하나에서 직접 스카우트됐다.

미래에셋증권 지점장 중에도 하나은행 PB출신이 많다. 김대환 이상걸 지점장 등이 PB로 스카우트돼 지점장으로 승진한 경우. 외환은행의 김희철 부장, 삼화저축은행의 한장준 사장과 정진희씨, ING생명의 박준배씨 등도 하나은행 PB출신이다.

하나은행은 94년 전략컨설팅사의 컨설팅을 받아 95년 PB팀을 출범시켰다. 현재 하나은행에서 활동하는 PB는 약 80명. 하나은행은 은행의 각 업무를 두루 경험한 대리급 직원 중에서 서류와 면접을 거쳐 예비PB를 뽑는다. 경쟁률은 수십대 1.

면접에서는 지식과 경험뿐만 아니라 신뢰감을 주는 인상인지, 대화를 풀어가는 기술이 있는지 등도 중요하게 살핀다. 예비PB들은 맡은 일을 하면서 최소 4개월의 PB교육을 받는다. 투자상담사 자산관리사 공인중개사 등 금융 관련 자격증을 보통 4,5개씩 딴다.

PB에 결원이 생기면 예비PB 중에서 PB를 뽑는다. 동료직원들의 평가, 업무 성과, 금융관리에 대한 지식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예비PB 중 결국 PB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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