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탈북 귀순자엔 반감 안드러내

  • 입력 2002년 8월 21일 18시 44분


21일 오후 기관장 이경성씨가 북한으로 돌아가기 직전 판문점에서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의 안내를 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21일 오후 기관장 이경성씨가 북한으로 돌아가기 직전 판문점에서 대한적십자사 직원들의 안내를 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서해 해상으로 탈북한 순종식(荀鍾植) 일가족에 의해 억류된 채 남쪽으로 내려온 사실이 확인된 기관장 이경성씨(33)를 21일 북한에 넘겨준 것은 본인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존중한다는 정부의 인도주의적 배려에 따른 것이다.

사실 이씨의 경우는 지금까지의 송환 사례와는 조금 다르다. 90년 이후 9건(시체 송환 2건 제외)의 북한군 및 주민 송환사례가 있지만 대부분 바다나 강에서 표류 끝에 넘어온 경우들로 송환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그러나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본인의 의사가 확인됐는데 지체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며 “본인이 망설였다면 송환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했다는 얘기도 없지 않았지만, 정부관계자들은 “갑작스러운 해상 탈북어선의 등장으로 내심 걱정한 것은 사실이나 북한이 고위층 인사가 아닌 일반 주민의 탈북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북측이 강한 톤으로 송환 요구 전화통지문을 보낸 것도 우리 정부가 신속한 송환 결정을 내리게 된 요인 중 하나. 북한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으리라는 일부 예상을 깨고 이날 오전 조선적십자의 전통문을 보내 이씨의 송환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북측은 그러나 다른 탈북귀순자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배를 타고 남측에 간 사람들’이라는 문구만을 사용했을 뿐이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은 탈북자들에 대해 ‘갈테면 가라’는 식의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이미 많게는 수십만명의 탈북자들이 중국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탈북어선이 남쪽으로 넘어갔다고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90년 이후 북한군 및 주민들 주요 송환 사례
1994.2.1북한군 김철진 하사, 김경철 상병(백령도 표류) 판문점 송환
1996.7.29북한군 김영길 하사(임진강 표류) 판문점 송환
1996.11.26북한군 정광선 상병(연평도 표류) 판문점 송환
1997.9.11북한군 조강건 하사(강화도 표류) 판문점 송환
2000.9.18주민 시체 3구 판문점 송환
2001.1.18주민 윤평수, 이명원씨와 선박(3t급·조업 중 표류) NLL해상 송환
7.16북한군 장교 시체 1구(연천군 필승교 표류) 판문점 송환
8.7북한군 이승훈 하사(중부전선 남대천 표류) 판문점 송환
11.19주민 나춘범, 황동춘씨와 선박(저진앞바다 표류) 동해공해 송환
2002.1.15북한선원 3명(러시아 상선 구조) 판문점 송환
8.21주민 이경성(탈북어선 기관장) 판문점 송환

▼송환 이모저모▼

이씨는 이날 오후 4시 판문점 가운데 그어진 경계선을 넘어 북측 구역으로 돌아갔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들과 함께 판문점에 도착한 이씨는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와 군사정전위원회 건물 사이 통로를 지나 양측이 합의한 정각 오후 4시 북측 구역으로 넘어갔다. 이씨는 북한땅을 밟자마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위대한 수령님 만세”를 외쳤다.

북측 환영단은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이씨의 어깨를 두드렸으며 양장 차림의 40대 여인이 준비해온 꽃다발을 이씨에게 전달하자 일제히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씨는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대기하는 동안 초조한 표정을 보였다.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줄담배를 피웠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상당히 기쁘다. 북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 싶다”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그는 또 대학 출신답게 “가족이 있고 내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씨는 남측이 제공한 흰색 셔츠와 회색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남하할 당시 가져온 검은색 가방을 들고 북쪽으로 돌아갔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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