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신화]<상>‘창조적 플레이’에 강팀들 “쩔쩔”

  • 입력 2002년 6월 26일 18시 20분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0년말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계약을 맺었을때만 해도 “너무 늦은게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2002월드컵이 종착역에 다다른 지금 돌이켜보면 히딩크 감독은 1년 6개월여 짧은 기간에 한국축구를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준으로 향상시켰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히딩크감독이 “체력에 지나치게 의존, 단기 성과를 내기에 알맞지만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공로를 결코 깎아내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월드컵 4강을 이룬 한국축구의 달라진 모습과 세계속의 위상을 살펴보고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세차례 집중 점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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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11을 빨리 확정해 포지션을 전문화시켜야 한다.” 한국축구대표팀이 지난해 부진을 거듭하자 국내 축구 전문가들은 일제히 “언제까지 테스트만 하고 있을 거냐”며 거스 히딩크 감독을 몰아부쳤다.

특히 월드컵 개막을 3개월 남짓 남겨두고 치른 북중미골드컵은 히딩크감독을 말 그대로 ‘바늘방석’위에 올려놓았다. 미국과의 대회 첫 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한데 이어 쿠바 멕시코 코스타리카 캐나다를 상대로 2골을 넣고 5골을 내주는 극도의 ‘골 결정력 부재’를 보여줬다. 그런데도 히딩크감독은 대회 기간 미련스러울 정도로 체력훈련을 강행했다.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볼땐 ‘금기 사항’만 골라서 한 셈.

하지만 한국축구는 어느 순간 혁명처럼, 봇물처럼 만개하기 시작했다. 3월 유럽 전지훈련 에서 1승2무의 월척을 낚아 올리더니 월드컵 직전 국내에서 가진 평가전에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 등 유럽 축구 강호들에 잇따라 어퍼컷을 날렸다. 그리고 2002월드컵에서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신화를 창조했다.

△신바람 축구〓현 한국축구대표팀이 과거와 가장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선수단에 넘치는 활달한 생기다. 특히 송종국 이천수 박지성 김남일 등 젊은 선수들은 히딩크 감독이 ‘오대영’이란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어 휘청거릴때도 “우리는 반드시 16강에 간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과거 언론이나 팬의 기대가 너무 앞서간다고 불평을 터뜨리던 것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

이같은 자신감은 그라운드에 그대로 투영됐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냉정을 잃지 않고 역습 기회를 노렸고 대역전 드라마를 일궈낸 이탈리아와의 16강전때 그 진가를 보였다.

△도깨비 축구〓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축구의 가장 큰 화두는 ‘파괴’였다. 네덜란드 출신 핌 베어벡 대표팀 코치는 이를 ‘무정형(無定型)의 축구’로 설명했다. 경기중 벌어지는 온갖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전술변화가 능동적이어야 하고 선수들이 포지션 파괴를 통해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같은 전술은 한국 선수들의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융합돼 폭발적인 전력 강화로 이어졌다.

폴란드 주장 토마시 바우도흐(독일 샬케 04)는 한국과의 첫 경기를 마친 후 “정말 어려운 경기였다. 한국은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축구를 한다”고 털어놨다. 한국 선수들이 경기중 자주 포지션을 바꾸며 폴란드 수비라인을 공략, 혼란에 빠뜨렸다는 설명이다.

그 원동력은 역시 오랜 테스트 기간을 거쳐 탄생한 다수의 ‘멀티 플레이어’다. 월드컵대회 고비마다 히딩크 감독이 수비수 대신 공격수들을 대거 투입, 승부를 걸고도 추가 실점을 면한 것은 바로 이때문이었다.

△창조적 축구〓해외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 최대 볼거리로 한국의 경기를 꼽았다. 78년 월드컵때 아르헨티나 감독으로 조국의 우승을 이끌었던 메노티는 이번 월드컵을 혹평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만큼은 “틀 안에서 끊임없는 모험을 하고 있고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스스로 빛을 내고 있다”는 찬사를 보냈다. 또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한국은 리드를 지킬 동안만 뛰는척 하는게 아니라 전 경기를 관통하는 모험심과 용기, 의지로 축구의 뿌리를 회복했다”며 한국 선수들의 엄청난 공격력과 투지를 칭찬했다.

이탈리아 페루자의 가우치 구단주가 이날리아팀의 패배 후 “그(안정환)는 한국에 돌아가 관심도 없는 이상한 축구나 하게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지만 한국축구는 이제 축구의 원시성과 박력을 가장 잘 구현한 축구다운 축구로 세계 무대에 인식되고 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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