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첫사랑의 휴유증

  • 입력 2002년 6월 13일 20시 38분


얼마전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와 이름 석자. 귀를 의심했지만 그는 분명 추억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첫 사랑이었다.

여고 시절 마음을 들킬까봐 가슴 졸이면서 참 많이도 좋아했었는데….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를 만난 것은 고향을 떠나 공주에서 친구와 단 둘이 자취생활을 할 때였다. 그는 같은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고교 2학년생이었고 고향이 같았다.

유난히 하얀 피부와 깔끔한 첫인상이 좋았다. 짝사랑에 불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무렵, 우연히 룸메이트인 선미도 그 오빠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둘은 한바탕 크게 말다툼을 벌였고 우정도 그렇게 끝이 났다. 어느날 저녁 학교에서 야간 자습을 마치고 들어와보니 친구는 짐을 싸 떠났다. 하지만 첫사랑은 깨지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그의 대학교 진학으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첫사랑도 싱겁게 막을 내렸다. 가끔 소식은 들었다. 캠퍼스 커플이고 제대를 했고 또 지난 해 봄 결혼한다는 소식들….

그렇게 잊혀져갔던 그가 ‘한 번 만나자’고 건 전화는 이 모든 추억을 되살려놓았다.

드디어 약속 시간. 여전히 흰 얼굴의 그는 멋쩍은지 대뜸 “너 아직도 결혼 안했다며…”라고 ‘위로’를 건넸다. 얼마전 태어난 그의 아들 자랑, 두 아이의 엄마가 됐고 다시 친구가 된 선미 사는 이야기 등 반가운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했다.

그와 헤어지면서 왠지 아쉽고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첫사랑의 그 설렘은 아니었는데. ‘그가 혼자이길 바랐던 건가? 순수했던 여고시절이 그리운 건가?’ 이래저래 첫 사랑의 후유증은 오래가는 법인가 보다.

김순옥 30·회사원·충남 청양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