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타]잉글랜드 명 수문장 고든 뱅크스

  • 입력 2002년 4월 8일 17시 55분


잉글랜드의 고든 뱅크스(左)가 1970년 멕시코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서 펠레가 슛한 볼을 몸을날려 쳐내고있다.
잉글랜드의 고든 뱅크스(左)가 1970년 멕시코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서 펠레가 슛한 볼을 몸을날려 쳐내고있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 경기 중 가장 관심을 끄는 빅카드는 잉글랜드-브라질의 경기였다. 전 대회 우승팀 잉글래드와 3회 우승을 노리는 브라질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두 팀의 대결은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와 잉글랜드의 ‘명 수문장’ 고든 뱅크스가 펼칠 창과 방패의 대결로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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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 3조 브라질-잉글랜드의 경기. 전반 18분 브라질은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다. 카를로스 알베르트의 전진 패스를 받은 자이르징요가 우측사이드를 돌파한 후 문전으로 센터링했고 펠레가 골지역 앞에서 솟아 올라 헤딩슛을 날렸다. 모두가 “골”이라고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볼은 골문 안에 있지 않고 골대 뒤에 떨어져 있었다.

자이르징요가 센터링하는 순간 뱅크스는 다른 브라질 선수를 의식해 왼쪽 포스트 쪽으로 다가갔지만 펠레가 헤딩슛을 날리는 순간 반대편 포스트로 몸을 날려 골과 다름없는 슛을 막아낸 것이었다. 뱅크스의 동물적인 순발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역대 월드컵에서 골키퍼의 가장 멋진 선방 장면으로 기록되고 있다. 펠레는 “내가 본 수비 중 최고였다”며 뱅크스의 선방을 극찬했다. 덴마크의 명골키퍼 피터 슈마이켈은 “골키퍼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라고 평가했다.

뱅크스는 월드컵사상 축구 팬의 기억에 남을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지만 전성기는 1966년 월드컵대회때였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활짝 웃고 있는 고든 뱅크스.(인터넷 스티브스풋볼페이지)

잉글랜드가 ‘축구 종가’라고 자부하지만 월드컵에서 정상에 오른 건 66년 자국에서 열린 잉글랜드월드컵이 유일하다. 잉글랜드 우승의 원동력은 6경기에서 3골만 내준 철통같은 수비였다. 뱅크스는 당시 ‘종가’의 골문을 굳게 지키며 우승을 이끌었다.

먹이를 나꿔채는 야수처럼 몸을 날려 상대의 슛을 막아내는 순발력, 뛰어난 공중볼 처리 능력, 본능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감각적인 위치선정, 공격수와의 1대1 상황에서 완벽한 대응. 골문 앞에 선 뱅크스는 상대 공격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뱅크스의 진가는 기록으로도 나타난다. 1963년 스코틀랜드와의 A매치에 출전한 뱅크스는 A매치 73경기서 35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신기에 가까운 기량을 과시했다. 66년 월드컵 대회 준결승에서 에우제비우에게 실점할 때까지 페널티킥을 7번 연속 막아내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뱅크스는 축구사에 남을 만한 기량을 지녔지만 ‘2인자’에 머물러 스포트라이트에서는 한발씩 비켜서 있었다. 잉글랜드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는 보비 찰튼에게 ‘우승의 주역’이라는 찬사가 쏟아졌고, ‘최고 수문장’의 영예는 비슷한 시기에 선수생활을 했던 러시아의 제프 야신에게 돌아갔다. 뱅크스는 72년 교통사고로 한 쪽 눈을 실명해 35세에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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