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이승재기자의 테마데이트]매너

  • 입력 2002년 1월 17일 15시 40분


이〓나폴레옹은 연인 조세핀에게 ‘내일 저녁 파리에 도착할 테니 목욕을 하지 마오’란 전갈을 보냈다고 합니다. 조세핀의 겨드랑이 냄새에 포로가 된 것이죠. 대부분의 경우 유쾌한 냄새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앙〓특히 저는 그 부분에 너무 민감하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인과 달리 암내가 없는 경우가 압도적이죠. 냄새는 역시 입 냄새가 중심 아닌가요? 우리나라 음식의 주된 양념인 마늘은 맛있고 건강에 좋지만 냄새가 강하거든요. 그런데 냄새 나는 걸 본인이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주위에서 일깨워줘야 하지만 상대가 무안해 할까봐 지적을 꺼리죠.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나 혹시 냄새 나, 안 나?” 하고 먼저 묻고 자문을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어느 소설에서 읽었는데, ‘향긋한 비누냄새가 참 좋았다’는 대목은 굉장히 호감이 가지 않아요? 양치를 자주 하지 못하면 껌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죠.

이〓선생님은 손님을 반드시 문 밖까지 배웅하십니다. 각도 20도의 단아하고 정중한 목례는 정평이 나 있죠. 인사 동작으로 인해 선생님의 꿈처럼 부풀어진 옷이 구겨지며 ‘사각’하는 소리가 만들어져 나올 때, 상대는 십중팔구 자신의 지위가 엄청나게 상승해 있는 듯한 환상에 빠집니다. 선생님께선 상대를 마주할 때 어떤 경우 가장 인내하기 어렵습니까?

앙〓앉는 포즈죠. 떠벌이는 듯한 자세로 앉거나 다리를 꼬며 앉는 것은 여성이나 남성이나 동양의 아름다운 상식에 어긋나죠. 심지어 다리를 꼰 채 밥을 먹는 걸 목격하면 ‘어떻게 소화가 될까’ 하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요. 또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칠 때 외국처럼 “하이(Hi)” 하고 인사하고 미소짓지는 않더라도 적대시하지 않는 분위기와 표정, 몸의 자세가 갖춰질 때 더 아름답고 풍요롭고 영원한 미덕을 지닌 정신적인 세계가 이뤄질 것 같아요. 그렇죠?

(대담 도중 앙드레김과 나는 투명하고 묵직한 크리스탈잔에 2분의 1쯤 고인 흑장미빛 체리주스를 마셨다. 나는 목이 마를 때마다 마셨다. 반면 그는 자신의 마시는 행위 때문에 대화가 끊길 것을 걱정해 내가 잔을 드는 순간에만 함께 잔을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잔 위에 종이냅킨을 얹어놓았다. 잔 주위에 미세하게 묻어난 입술자국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모드를 벨소리에서 진동으로 바꿨다.)

이〓에티켓도 상대에 따라 변하는데요.

앙〓어린아이를 대할 때는 굉장히 절친하고 허물없는 사이가 아니라면 “아기, 그랬나요?” “어떤가요? 이거 먹어요” “이거 어때요? 좋아요?” 식으로 존대하는 것이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생각하구요. 주위에서 “자식놈 잘 있어요?” “아들놈 잘 있어요?” 하는 대화가 오가는 것을 보면 굉장히 듣기 안 좋아요. 남녀간에도, 여성의 경우 남성이 무조건 자기를 사랑해 주고 다 매력적으로 보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조금 위험하죠. 또 남성도 여성에게 자신의 러프(rough)하고 와일드한 행동이나 말이 모두 남성스럽고 멋지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해도 자기 자존심을 지키면서 흐트러진 꼴을 보여서는 안되죠. 그렇다고 경직되고 긴장되게 데이트를 해야한다는 건 절대로 아니구요. 상대방에게 실망을 느끼고, 이런 것이 한 번 두 번 쌓일 때 나중에는 보고 싶어지지 않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부부 사이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진한 화장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흐트러진 머리를 간단히 정리하고 단아하고 깨끗한 분위기로 기본적 예의를 지키는 게 아주 오래오래 간직되는 영원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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