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설악산의 '산양지킴이'박그림씨

  • 입력 2002년 1월 17일 15시 00분


<<강원도 설악산에서 몇 남지 않은 야생 산양을 지키며 살아가는 박그림씨(54). 1970년대 초 설악산에 등산을 와 수렴동 계곡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초겨울 기울어가는 늦은 오후의 햇살사이로 산양 몇마리가 바위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있었다. 박씨는 그날 그 짧은 순간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라지기 직전 잠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던 산양의 모습은 얼마나 당당했던가. 목 아래 하얗게 빛나던 털빛, 날카롭게 뒤로 뻗은 검은 뿔. 그 눈은 또 얼마나 순하고 맑았던가. 설악산에 남아있는 가장 큰 포유류 동물이지만 지금은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이곳에서는 겨우 30, 40마리 정도 남은 것으로 추정될 뿐인 산양. 산양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된 그도 요즘은 한 열흘씩 길목에서 작심하고 기다려야 그 동물을 마주칠 수 있다. 그것도 운이 좋을 때 수백 m씩 떨어진 먼 곳에서….>>

박씨는 설악산 입구 설악초등학교 근처에서 부인, 두 자녀와 함께 10년째 설악산을 지키며 산다.

13일 그를 만나러 속초로 향했을 때 차는 미시령 입구에서 길이 막혀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미시령에 폭설이 내렸다. 이곳에 올 때까지는 맑은 날씨였는데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후차가 심했다. 할 수 없이 진부령으로 돌아가는데 눈이 비가 되어 내렸다. 같은 산인데도 어느 곳에는 눈이 오고, 어느 곳에는 비가 온다. 박씨가 살고 있는 설악동에도 비가 내렸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그는 많은 날을 산에서 보낸다. 눈에 찍힌 산양의 발자국을 따라 산양의 생활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산중에 질척한 눈이 내리는 이날 그는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어야 했다. 산양은 주로 바위 절벽에 산다. 누가 다가오면 질긴 고무 패킹처럼 생긴 압착력 큰 발바닥으로 경사진 바위를 뛰어내리며 도망치는 게 그 동물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런 산양을 찾아나서기에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날씨다.

박씨는 지난해 11월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연해주의 라조브스키, 시호테알린 등의 자연보호구에서 산양을 보고 돌아왔다. 12월에는 그곳에서 찍어온 슬라이드 필름을 현상하느라 바빴고 올해 1월에 들어서는 그 필름을 가지고 서울에서 몇차례 강연을 하러 돌아다녔다. 오랫동안 못 본 산양들을 찾아 모처럼 집을 나서려고 한 날 마침 비가 내려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1967년 설악산학술조사보고서 문교부’라고 쓰인 낡은 책 한권을 꺼냈다. 66년 5월이 조사시점인 이 자료에는 “설악산에서 곰은 한해 수십두, 산양은 한해 수백두가 포획됐다”고 적혀있다. 그 많던 곰과 산양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설악산에서 곰은 최후의 한 마리가 83년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 보고된 이후 전혀 목격자가 없다. 곰이 사라진 지금 산양도 멸종위기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설악산의 가장 큰 포유류 동물로 남아있다.

박씨의 산양에 대한 관심은 95년 설악산의 세계자연유산 신청이 검토되던 때 한 유네스코(UNESCO) 조사관의 길잡이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조사관은 박씨에게 “설악산만큼 아름다운 산은 다른 곳에도 많다”며 “그런데 왜 이 산에는 야생동물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고 “야생동물이 없는 산은 죽은 산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씨는 그 조사관의 말에 충격을 받고 처음 야생에서 산양을 봤을 때의 감동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호랑이가 없는 시베리아 산림은 얼마나 황량할 것이며 무소가 없는 남아프리카 초원은 또 얼마나 황량할 것인가.

그러나 막상 산양의 흔적을 추적하고 그 생태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산양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기 힘든 바위 절벽에 살고 있는 데다 사람이 접근하면 멀리 도망가 버린다. 산양은 200m정도 떨어진 곳의 나뭇잎 밟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산양을 육안으로 관찰하는 것은 그 이상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운이 좋은 때의 얘기고 대부분의 경우 산양이 누고 간 까만 똥을 보는 것이나 산양이 자기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벗겨낸 나무 껍질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국내 전문가도 만나봤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산양에 대한 지식은 외국책이나 고문헌을 보고 안 것이 대부분이고 자연상태에서 살아가는 산양을 관찰한 기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 부처나 국립공원관리공단도 설악산에 사는 산양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30, 40마리라 하는 것도 박씨가 돌아다니면서 본 산양의 흔적으로부터 어림잡아 계산한 것이다. 박씨는 산양의 생태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싶은 답답한 마음에 산양 똥을 먹어보기도 했다. 야생동물의 똥에는 기생충이 많이 산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기생충 약을 사먹어야 했지만 갈증은 커져갔다.

이런 그에게 최근 러시아의 알렉산더 미슬렌코프와 볼로시냐 박사 부부와 함께 연해주의 자연보호구를 둘러본 것은 큰 전환점이 됐다. 두 박사부부는 1년에 2500시간 이상을 산양을 관찰하며 보내는 산양전문가들로 거의 매일 1시간 반을 차를 타고, 그리고 또 1시간 반을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 산양을 관찰하고 그 이동경로와 행태를 기록해 왔다. 그러다보니 사진만 보고도 어떤 녀석이 암놈이고 수놈인지, 또 몇 살인지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다.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등에 분포하는 산양은 같은 종이다. 아마도 먼 옛날 러시아의 산양이 옛날 중국과 북한 지역을 거쳐 한국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박씨는 두 박사부부가 쓴 책을 얻고나서 마치 산양에 관한 시튼의 동물기를 발견한 것처럼 기뻐했다.

설악산의 산양은 흑선동계곡을 거쳐 대승령을 지나 서북능선을 통해 귀때기골에 이르는 내설악 남쪽 지역에서 발견된다. 본래 산양은 바위봉이 많은 외설악 지역에 주로 살았지만 관광객에 밀려 내설악 지역으로 들어온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그러나 내설악에서도 산양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대승령에 대한 등산로 봉쇄가 해제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승령 주변 능선에서 산양의 똥이 보였는데 최근 들어서는 전혀 보이지 않아 그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는 곰이 사라진 설악산에서 산양마저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면 이 지역을 앞으로도 수십년은 더 자연휴식년 적용구간으로 묶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씨는 러시아에서 돌아와 산양연구소를 열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물론 환경부에 1년에 한번씩 설악산에 대한 자연조사활동 보고서를 써주고 받는 대가와 약 40명으로 구성된 산양사랑회의 후원금 등으로 생활하는 그에게 산양연구소를 설립할 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누가 장소를 임대해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연구소 운영비를 내놓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다. 그저 끝까지 가면 뭔가 길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가고 있다. 민간단체인 설악녹색연합 대표일 뿐인 그가 산양연구소 자리로 마음에 두고 있는 곳은 흑선동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의 백담대피소. 박씨가 늘 산양을 관찰하기 위해 아침에 출발하고 저녁에 돌아왔던 곳이 이 대피소였다.

반달곰이 사라진 설악산의 입구에서 조잡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반달곰 동상이 서서 등산객을 맞는 모습은 묘한 느낌을 준다. 박씨는 설악산의 상징은 더 이상 있지도 않는 반달곰일 수 없으며 산양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언젠가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내설악 깊은 곳으로 들어가 저 멀리 능선 위로 산양들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설악산을 꿈꾸고 있다. 그런 설악산이 되면 혹시 어디선가 다시 반달곰이 돌아와 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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