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데뷔시절]심현섭, 쇼 프로로 '바람잡이'로 감각 키워

  • 입력 2001년 5월 16일 18시 46분


어릴 적부터 우리 집 식구들은 남을 웃기는 데 소질이 많았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전 민정당 총재비서실장 심상우 의원)도 밖에서 약주를 드시고 집에 돌아 오시면 거실에서 노래를 틀고 나와 춤을 추면서 당시 돌아가던 이야기들을 코믹하게 풀어내시곤 했다.

대학(서울예술대 시각디자인과 89학번)에서 나는 학과 공부는 뒤로 한 채 연극과 등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내 소질을 검증할 기회조차 얻지못한 나는 군대(해군 홍보단)에 가서야 재능을 발견했다. 어찌보면 훈련과정이었는데 시골에 위문 공연가서 웃기지 않으면 그날 밤은 기합이 기다리는 나날이었다.

제대 후 개그맨이 되고자 1993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 도전했는데 어이없게도 떨어졌다. 그 후 3년을 빈둥빈둥 지내다가 1996년 SBS 공채기수(6기)로 개그맨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금방 뜰 줄 알았는데, 막상 별다른 출연 섭외조차 없었다.

그래서 절치부심 끝에 시작한 것이 소위 ‘바람잡이’였다. 오락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관객들을 웃겨 긴장을 풀게하는 게 임무였다. 그래야 본방송에 들어가서 사소한 개그로도 관객들의 박장대소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100회도 넘게 했던 것 같다.

허드렛일이었지만 그 때 나는 관객들의 웃음 코드를 읽으면서 마래에 내 시청자가 될 사람들의 ‘폭소 사이클’을 짚어볼 수 있었다. 내가 <개그 콘서트> 등에서 애드립을 치기 직전 몇초 동안 시청자들의 기대 심리를 읽어볼 수 있는 것도 바람잡이를 하면서 배웠다.

본격적인 기회는 또 3년이 지난 1999년에 왔다. KBS2 <시사터치 코미디파일>에서 이다도시, DJ 등 온갖 캐릭터의 성대모사를 하는 역이었다. 긴장됐지만 그냥 바람잡이처럼 편안하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설 늘어놓듯이 마구 쏘아댔다.

그런데 그게 먹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순항이었다. 평소에 웃길 걸 충분히 생각하고 친구나 동료들하고 밥먹으면서 1차 검사받고 그리고 무대에서 한번 더 생각한 후 쏟아내기. 그게 내 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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