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서울예술대 시각디자인과 89학번)에서 나는 학과 공부는 뒤로 한 채 연극과 등을 기웃거렸다. 하지만 내 소질을 검증할 기회조차 얻지못한 나는 군대(해군 홍보단)에 가서야 재능을 발견했다. 어찌보면 훈련과정이었는데 시골에 위문 공연가서 웃기지 않으면 그날 밤은 기합이 기다리는 나날이었다.
제대 후 개그맨이 되고자 1993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 도전했는데 어이없게도 떨어졌다. 그 후 3년을 빈둥빈둥 지내다가 1996년 SBS 공채기수(6기)로 개그맨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금방 뜰 줄 알았는데, 막상 별다른 출연 섭외조차 없었다.
그래서 절치부심 끝에 시작한 것이 소위 ‘바람잡이’였다. 오락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관객들을 웃겨 긴장을 풀게하는 게 임무였다. 그래야 본방송에 들어가서 사소한 개그로도 관객들의 박장대소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100회도 넘게 했던 것 같다.
허드렛일이었지만 그 때 나는 관객들의 웃음 코드를 읽으면서 마래에 내 시청자가 될 사람들의 ‘폭소 사이클’을 짚어볼 수 있었다. 내가 <개그 콘서트> 등에서 애드립을 치기 직전 몇초 동안 시청자들의 기대 심리를 읽어볼 수 있는 것도 바람잡이를 하면서 배웠다.
본격적인 기회는 또 3년이 지난 1999년에 왔다. KBS2 <시사터치 코미디파일>에서 이다도시, DJ 등 온갖 캐릭터의 성대모사를 하는 역이었다. 긴장됐지만 그냥 바람잡이처럼 편안하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설 늘어놓듯이 마구 쏘아댔다.
그런데 그게 먹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순항이었다. 평소에 웃길 걸 충분히 생각하고 친구나 동료들하고 밥먹으면서 1차 검사받고 그리고 무대에서 한번 더 생각한 후 쏟아내기. 그게 내 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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