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에 바란다/최정호]「문화 르네상스」기대 크다

  • 입력 1998년 2월 8일 20시 48분


《25일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새 정부를 꾸려나갈 진용(陣容)이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후보가 발표되었으며 조만간 첫 조각(組閣)의 면면이 드러날 전망이다. 나라가 어려운 만큼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들로부터 새 정부에 대한 바람을 분야별로 들어본다.》 금세기의 마지막 대선에 승리하여 청와대의 주인이 될 김대중차기대통령은 후세의 역사가들 눈에는 ‘행운의 정치인’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나라의 경제가 그의 부임을 앞두고 ‘국가부도위기’라는 최악의 벼랑에 몰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물론 치적이 찬란한 전임자보다 실정이 누적된 전임자의 그늘에서 등장하는 후임자가 쉽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야속한 속셈에서만 하는 말은 아니다. 김차기대통령의 행운은 또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체제를 불러들인 실정때문에 오히려 김영삼 대통령이 구두선처럼 되뇌던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각분야의 ‘세계화’를 이제는 ‘타력에 의해서’ 훨씬 수월하게 실현할 수 있게 된데에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김차기대통령의 보다 큰 행운은 대선에 세번이나 낙선한 불운 때문에 오히려 그가 좋아하는 노래가사처럼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he Troubled Water)’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제2의 천년대(Millenium)에서 제3의 천년대로 이 겨레를 이끌어갈 그야말로 1천년에 한번 있는 기회에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21세기란 어떠한 세기인가. 21세기는 저물어가는 20세기의 발전이 소홀히 했던 차원, 경제발전이 소홀히 했던 인간적 차원, 곧 문화의 문제가 발전의 새로운 중심에 자리잡는 ‘문화의 세기’가 되리라고 바깥 세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그러한 세계의 전망을 민족사의 문맥에서 잡아본다면 한반도의 21세기는 15세기의 세종시대,18세기의영정조시대에이어 3백년만에 되돌아오는 한국문화의 제3의 르네상스가 되리라 기대되는 세기이다. 세종조 문화의 개화에는 중국의 지배로부터 우리 것을 찾고 지키려는 민족자존의 의지, 백성을 어엿비 여긴 민본주의 사상이 대왕의 모든 치적에 밑바탕이 되었다. 영정조문화의 개화에는 왜(倭) 호(胡) 양란을 겪으면서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는 팽배한 국민의 주체의식과 당쟁을 극복하려는 양왕의 탕평책이 그 밑바탕이 되었다. IMF체제를 견디며 다지고 있는 우리들의 민족자존의 의지,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의 성취로 보여준 우리들의 현대적 탕평(蕩平)정신은 ‘문화의 세기’를 열어갈 새정부에 안겨주는 국민들의 가장 큰 선물이다. 물론 앞으로 열릴 새로운 천년세월을 내다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다만 지나간 천년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한반도의 지난 천년은 신라통일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일관하여 중앙집권주의 수도중심주의 서울일극주의를 고수한 천년이었다. 더욱이 해방이후 반세기의 한국현대사는 이같은 중앙집중주의를 더욱 심화 악화시켜 서울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과 물류집중, 행정집중과 문화집중을 가속화시켜 놓았다. 그 결과 전국 인구의 절반이 휴전선 바로 밑의 수도권에 몰려살아 사람이 운신하기도 어렵게 된 것이 세기말의 서울과 한국의 현실이다. 따라서 새로운 천년대가 열리는 다가온 21세기에는 중앙집중화로 일관했던 한반도 천년의 구심적(求心的)인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어 탈중심 탈중앙의 원심적(遠心的) 발전의 새천년을 열어갈 역사적 물꼬를 트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전국의 어느 곳에서나 잘 살 수 있는 지역발전, 지방문화 육성이 그 요체이다. 그럼으로써 저물어가는 20세기는 문화적으로 서울이 곧 한국의 전부였다고 한다면 앞으로 맞을 21세기부터는 한국의 전지역이 문화적으로 서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엄청난 역사적 과제들을 새 정부의 임기내에 다 맡아 해줄 것을 국민들은 바라지 않고, 그러한 바람은 위험하기조차 하다. 중요한 것은 다만 21세기의 한국에 관한 올바른 전망과 비전을 갖고 그를 향한 올바른 제1보(步)를 내디뎌 달라는 것이다. 그 다음은 뒤에 오는 정부도 이젠 반드시 그를 따라야 될 올바른 보법(步法), 곧 정치와 행정의 올바른 관행을 김대중 정부가 시범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주문이 아니다. 이 땅에 이제야말로 법치주의의 관행을 정착시켜 달라는 것이다. 누구나 모든 것을 법대로 함으로써 예측가능하고 믿을 수 있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새정부만이 아니라 한국의 대외적 신인도를 높이는 정도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최정호<연세대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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