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지의 세상읽기]독재에의 향수

  • 입력 1997년 10월 4일 08시 11분


「머리가 아프세요? 망치로 두들기세요! 이가 아프세요? 펜치로 빼세요! 두통 치통에는 망치 펜치!」. 군사 문화가 창궐하던 시대에 유행했던 가사변조 CM송 중 하나다. 장난 같지만 간단한 문장 속에 문제해결에 대한 가장 끔찍하고 화끈하며 재발의 우려없이 확실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폭력」이다. 아픈 머리와 아픈 이 자체를 망치와 펜치로 일거에 파괴, 제거했는데 다시 시달릴 일이 있는가. 참으로 화끈하다. 이런 과감한 결단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며, 또한 결단을 실행하는 대담함과 그 확고한 추진력, 그건 아무나 가지는 영도자의 자질이 아니다. 민족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고작 살아야 이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싸악 쓸어서 한 군데 집어넣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새 사람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부 심약한 인간이 병나거나 죽거나 후유증이 있었던 거야 어쩌겠는가. 이런 말이나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건이 있다. 단지 나 또는 내 주변사람이 그 피해 당사자가 되지 않는다면…. 폭력처방과 폭력조치는 당하는 사람 말고는 하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에게 과감하면서도 화끈한 조치로 보일 수 있는 맹점이 있다. 신중하게 고려하고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을 우유부단하고 남의 눈치나 본다고 비난하는 사람의 눈에는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고, 남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이 결단력과 독자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다. 또 이들 눈에는 이러한 대통령이 민족의 앞날을 「홀로」 내다보시고, 밤낮으로 걱정하시는, 그리하여 「고독한 영도자」로 보일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폭력적 해결책은 대개 「××척결」 「△△와의 전쟁」 「○○망국병」 「□□열풍」 등의 제목을 단 매스컴의 호들갑을 통해 고무돼 시행된 다음에 부작용이 쏟아지면 완화, 철폐하거나 있으나마나한 조치로 방치되고는 해왔다. 과외단속 비리척결 범죄와의 전쟁 등이 그랬으며 앞으로는 입시나 청소년의 성문제 매매춘 등 그러한 방식으로 한없이 강경조치만 쏟아내면서 속으로는 더욱 음성화 고액화되면서 냄새를 풍겨낼 일이 얼마나 많은지….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가지 원인 규명을 위한 모색과 여론의 경청, 반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아니면 설득 당하는데 요구되는 시간은 잘못 시행된 일을 수습하는데 필요한 시간,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받은 또는 받을 상처에 비하면 절대로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다. 섣부른 강경책의 선호가 폭력조치의 미화로 연결되어 지난날의 독재에 대한 어리석은 향수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게 안타깝다. 최연지 (방송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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