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3>父子배우, 김용건 씨가 말하는 아들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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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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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인물에 빠져 사는 열정 보기 좋아 반짝 배우 아닌 ‘장거리 선수’로 남기를”

배우 김용건 씨(오른쪽)가 아들 하정우 씨를 보는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냉철하다. 지
난달 대구에서 열린 하 씨의 그림 전시회에 부자가 나란히 서서 관람객을 맞고 있다.
김용건 씨 제공
배우 김용건 씨(오른쪽)가 아들 하정우 씨를 보는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냉철하다. 지 난달 대구에서 열린 하 씨의 그림 전시회에 부자가 나란히 서서 관람객을 맞고 있다. 김용건 씨 제공
사실 이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럽다. 영화평론가가 아닌 아버지가 아들 하정우(본명 김성훈)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건 쉽지 않다. 나와 동년배인 배우들은 연기에 있어 나보다 아들이 낫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연기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별다른 코멘트를 안 하는 편이다. 그저 “촬영 스태프들과 잘 지내라, 베풀어라”라고 얘기하는 정도다.

정우와 동생 차현우(김영훈) 모두 나의 연기자 생활을 봐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가 된 것 같다. 내가 연기생활을 오래하긴 했지만 솔직히 순탄하지는 않았다. 배우란 직업이 그렇지 않은가. 앞길이 막연하고 기회를 기다려야 하고….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도 자기 나름대로 사람들 만나고 오디션도 보러 다니고 남모르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내 아들이 배우를 하니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다. 운도 있었겠지만 어찌됐든 자기가 이뤄낸 성과라고 본다. 이 아이가 잘될지 좀 두렵긴 했다. 앞길은 ‘안개’ 같은 것이다. 애들 진로가 어찌될지 알기가 쉽겠는가. 방송가에 연예인 2세가 많아 처음에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출연한 영화를 쭉 봤지만 연기력에 대해 딱히 말은 못하겠다. 내가 얘기하면 자기 나름대로 인물에 대해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망가질 것 같아서다. 실제로 정우는 인물에 푹 빠져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네가 나보다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난 배우생활을 오래만 했지 그렇게 남다르지 않았다.

정우는 영화 ‘황해’를 찍을 때 일상에서도 극중 인물 구남이에게 들어가 있었다. 그 인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조선족이 다 그렇다는 얘긴 아니지만 머리도 수염도 안 깎고, 어떻게 보면 씻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옷차림을 보고 “그러고 다니지 마라. 영화도 영화지만 대문 앞을 나서는 순간 배우에게 밖은 무대다”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영화 ‘국가대표’를 할 때도 보면 그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나도 국가대표에 출연했는데 현장에서 지켜보면 무슨 노동자 같았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스키선수 같이 생활하는 걸 보고 ‘아, 나는 배우생활을 오래하긴 했어도 포장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가 인물 특성을 잘 잡아낸다는 평가를 듣는다면 이렇게 인물에 빠져 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우가 한 작품 가운데 ‘멋진 하루’ ‘두 번째 사랑’ ‘추격자’가 내가 꼽는 ‘베스트 3’이다. ‘멋진 하루’에서는 하루에 일어나는 일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연기하는 모습이 꼭 연기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정우의 실제 모습이랑 그 인물이 닮은 건 아니지만 리얼했다. ‘두 번째 사랑’에서는 영어로 연기하는 등 본인의 열의가 컸다. 내의 바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열심히 임한 걸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 작품은 외국 여성과의 사랑을 표현한 만큼 앞으로 외국인 관객의 공감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다. ‘추격자’의 배역은 소름끼치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정우는 영화를 찍으며 힘들다거나 고단하다고 한 적이 없다. 본인이 즐긴다는 얘기다. 그림을 즐기는 모습도 보기 좋다. 새벽에 ‘황해’ 촬영을 끝내고 와서 잠을 못 자도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리며 앉아 있곤 했다. 마음을 추스르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코믹하고 밝은 쪽으로 캐릭터의 폭을 넓혀 봤으면 좋겠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영화 ‘의뢰인’에서는 변호사역을 맡았는데 밝은 편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기존 역할을 벗어나 가리지 않고 도전하면 좋겠다.

정우는 반짝 하는 배우가 아니라 ‘장거리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요즘 후배 배우들은 너무 쉽게 드라마를 한다. 드라마를 하나의 일회성 상품으로 생각하나 보다. 질보다 만들어 내기에 급급하고 반짝했다가 금방 사라진다. 연기는 단순히 대사를 외워 읊는 게 아닌데 그저 외우기만 하는 후배들도 있다. 그런 배우는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시청률이 안 나오는 건 물론이고 본인도 큰 상처를 받는다. ‘내가 이 일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각오로 연기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력이 있다.

정리=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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