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최우열]이중의 레임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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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열 사회부 기자
최우열 사회부 기자
5년여 전 이명박(MB) 대통령 정부 4년 차를 시작하던 2011년 1월 10일, 여권 전체에 난리가 났다. 청와대가 내정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지원 사격을 해줘야 할 여당인 한나라당이 “국민의 뜻을 알아본 결과 부적격 인사이며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그달 26일 잡혔던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만찬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에서 당의 ‘반란’을 대통령에게 황급하게 보고했던 사람은 지금의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정진석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었다.

박근혜 정부 4년 차인 2016년 6월 ‘4년 차 증후군’은 똑같이 반복됐다. 여당은 청와대의 의중과 정반대로 유승민 의원 등 탈당 의원들의 조기 복당을 밀어붙였고 5년 전 당의 기습공격에 혼비백산했던 정 원내대표가 그 선봉에 선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청와대는 예정됐던 고위 당정청 회의를 전격 취소했다. 5년마다 반복되는 4년 차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쉽게 설명하자면 ‘레임덕’ 전초 현상이다.

레임덕(lame duck)은 ‘날개에 총을 맞아 살아있기는 하지만 날지 못하는 오리’를 뜻한다. 미국에선 대선 직후부터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정식으로 취임할 때까지 3개월여 동안 현직 대통령이 겪는 국정공백 상태를 설명하는 용어로 많이 사용된다. 18세기 영국에선 파산한 사업가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레임덕에 들어간 대통령은 이미 정치적 파산상태에 돌입했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힘은 여당에 대한 장악력뿐 아니라 거대한 관료 조직에 대한 장악력을 의미한다. 돈(예산)과 인사권으로 관료들을 휘어잡아 집권세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그런데 레임덕에 빠진 청와대와 여당이 공방을 벌이는 와중이라면 공직사회는 어떻게 돌아갈까. 관공서 벽마다 걸려 있는 대통령의 국정목표는 쳐다보지 않은 지 오래며, 삼삼오오 모여 다음 대선을 얘기하고 업무는 뒷전이다. 한 공무원은 “옛 장관이 물러나고 새 장관이 지명되는 짧은 기간이라도 모두가 일손을 놓을 지경인데 대통령이 바뀐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런 현상이 경찰 조직에서 가장 먼저 벌어지는 듯하다. 부산 학교전담경찰관 사건에 이어 인사고과 점수 때문에 사격 대리시험을 치르는 경찰관이 나오는가 하면, 현직 경찰관이 “폭발물이 설치됐다”고 경찰에 허위신고를 하는 해괴한 일도 벌어지는 등 잇단 기강해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경찰관 비행이 드러난다. 정권 4년 차뿐 아니라 경찰청장도 8월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경찰 내부에선 “이중의 레임덕을 겪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복되는 레임덕 현상은 공직자들의 기본적인 민주주의 정치 교육의 결여 때문에 벌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5년마다 바뀌는 대통령, 혹은 더 자주 바뀌는 장관이나 기관장이 아닌 정부의 진짜 주인이 자기 옆에 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걸 인식한다면 레임덕을 입에 올리기조차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최우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
#레임덕#대통령#경찰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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