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를리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엇갈린 반응
‘인터뷰’ 상영관 테러위협에 오바마의 단호한 대응
“독재자가 미국사회에 영화 검열 강요할 수 없다”
대북풍선 제지 정당화한 의정부지법 판결
헌법정신과 대법원 판례에 배치
세계 곳곳에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분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무함마드의 풍자만화를 게재한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에 들어가 10명을 살해한 야만적 테러에 대해 세계인들은 “나는 샤를리다”라는 표지판을 들고 규탄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언론자유를 겁박하는 테러에 대한 분노와는 별도로 가톨릭 이슬람을 가리지 않는 샤를리의 종교 조롱을 불필요한 도발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칼럼에서 “샤를리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순교자처럼 찬양되고 있지만 그 잡지에 실렸던 풍자만화는 증오 표현(hate speech)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대학신문에서 그런 만화를 실었다면 다른 종교나 인종을 증오하고 경멸하는 헤이트 스피치로 취급돼 대학당국이 재정지원을 중단하거나 문을 닫게 했으리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우월적 지위를 지니고 있지만 무제한의 절대적 자유는 아니다.
내가 나의 신념과 종교를 소중히 생각하듯 16억 인구가 신봉하는 예언자를 경멸하는 것은 타 문화에 대한 관용이나 배려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 프랑스 정부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가 기승을 부릴 때 샤를리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외설 만평을 싣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샤를리는 거부했다. 언론 자유의 선진국인 프랑스가 그렇다고 샤를리를 검열하거나 잡지의 배포를 중단시킬 수도 없었다.
소니픽처스가 해킹과 테러 위협에 겁먹고 김정은을 풍자한 영화 ‘인터뷰’의 상영을 중단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세계 어떤 독재자도 미국 사회에 검열을 강요할 수 없다”며 북한에 비례적인 응징을 예고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소니픽처스 해킹에 북한이 관여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만 공개할 수는 없다고 발표한 뒤 오바마 대통령은 대북제재 행정명령을 내렸다.
소니픽처스의 최고경영자 마이클 린턴은 “극장의 80%가 협박이 두려워 상영 중단을 결정한 판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대응방침이 나온 뒤 소니픽처스는 곧바로 케이블과 인공위성 TV, 인터넷을 통해 인터뷰를 풀었다. 그 덕에 나도 인터넷으로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인터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김정은과 오바마가 서로 화를 낸 영화이니만큼 박 대통령도 관람 기회를 갖기 바란다.
최근 의정부지법 김주완 판사는 대북(對北)풍선단장 이민복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다. 북한은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이 북한 지역으로 들어올 경우 도발 원점을 조준 타격하겠다고 계속 위협했다. 실제로 작년 10월 10일에는 대북풍선에 고사포를 쏘아 파편이 민통선 지역에 떨어진 적도 있다. 의정부지법의 판결은 대북풍선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의 신체와 생명에 급박하고 심각한 위협을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군인이나 경찰관이 그 행위를 제한하는 것은 경찰관직무집행법이나 민법에 비추어 위법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오바마처럼 생각한다면 이 판결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북한 독재정권의 협박에 굴복한 선례를 남겼다. 포천경찰서장이나 파주경찰서장이 현장에 나와 현지 주민과의 충돌 방지 차원에서 자제를 요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북한에 관한 표현의 자유와 북 주민의 알권리를 제한한 지방법원의 판결은 헌법과 대법원 판례에도 배치된다. 헌법상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이고 대법원은 일관된 판례를 통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는 필요하지만 무릎을 꿇고 얻은 대화는 북한의 독재자를 오만하게 만들고 북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도 어렵다.
다만 대북전단 살포가 너무 이벤트 식으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다. 김정은의 아내 이설주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표현은 주민에게 미치는 효과를 생각해볼 때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바람이 북에서 남으로 불 때 미리 예고한 일정에 따라 풍선을 날리는 이벤트는 후원금을 걷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전단이 과연 북으로 갈지 의문이다. 휴전선 일대 주민이 불안해하는 것이 사실이므로 사전에 매스컴에 알리고 대낮에 공공연한 장소에서 풍선을 날리는 행사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극단주의 종파나 독재자에게 자유언론의 검열을 맡기는 꼴이 돼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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