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 겸 작가 故 최윤희 “성실성과 편집증도 타고난 재능이지 않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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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말 한마디]만화가 이현세

만화가 이현세
만화가 이현세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는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게 될 내 운명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내가 모르는 엉뚱한 다른 곳에서 껄껄껄 웃고 있었습니다. 입학원서를 들고 색신검사를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적록색약을 통보했고, 내 미대 입학지원서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미대뿐이 아닙니다. 자연계는 몽땅 지원할 수 없었고 육해공 사관학교생도도 자격이 없었으며 심지어 운전면허까지 그때는 딸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당연히 좌절했고 때 이른 술꾼이 되어 신라의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경주의 밤거리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휘젓고 다녔습니다. 운명이었을까요. 술기운 속에서 불현듯 가슴을 헤집고 뛰쳐나와 나를 구해준 시 한 편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였지요.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보고 싶었지만 어느 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어서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하는 작가의 한숨이 함께하는 시였습니다. 나는 이 시의 한숨에 공감했고 오랫동안 마음을 정하지 못해 방황하던 화가와 만화가 사이에서 기어코 만화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만큼 만화는 내게 즐거움을 주었고 타고난 기질대로 행한 몰입과 즐거운 편집은 나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내 선택에 만족했고, 만족한 만큼 오만해졌습니다.

막 40대 초입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행복전도사’로 불리던 최윤희 씨를 만난 것은 내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됐습니다. 시니컬하고 도발적인 성격이 비슷해 첫 만남에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웠는데 때로 내 오만이 문제가 됐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작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종류는 그림을 그리다가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전화도 받는 사람이고, 또 한 종류는 그리던 그림이 끝나지 않으면 배도 고프지 않고 생리작용도 멈추고 전화벨 소리도 못 듣는 종류입니다. 나는 후자였습니다. 나는 그리던 사람의 팔다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는 사람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천장만 쳐다보고 매일 글 한 줄 쓰지 않는 게으름에 대해서는 진절머리를 쳤습니다.

바로 이때 최윤희 씨의 냉랭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성실성과 편집증도 타고난 재능이지 않나요? 성실성이 당신의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니듯이 게으름도 그 사람의 선택은 아닙니다.”

아아,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랍고 섬뜩해 바로 항복하고 말았지요. 그렇습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능력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는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가당치도 않게 그 능력을 내 노력의 산물로 오해하면서 얼마나 많은 날을 거드름을 피웠는지 알게 됐습니다.

사실 대다수의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찰 정도의 능력들이 가득하지만 항상 없는 것을 욕심내고 있을 뿐. 우리에게 언제든 선택하는 일만 남은 것이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 뒤 내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후배작가들이 좋아하는 짧은 제 글이 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니까 천재를 만나거든 다투지 말고 먼저 가라고 보내라고, 그리고 우리는 하루 한 걸음만 더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살이가 시시해져서 멈추어 선 천재를 밟고 지나갈 수 있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다룬 글입니다. 한번 입은 상처는 쉬 극복이 안 되는 법이니까요. 운명뿐 아니라 순리냐 아니냐 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가 이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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