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무바라크 겨우 25년형?” 성난 이집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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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혐의 아닌 방조죄 적용… 두 아들 부패혐의는 아예 무죄
WP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 카이로 등 곳곳 격렬시위

지난해 ‘아랍의 봄’으로 물러난 이집트의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84)이 2일 법정에서 2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사실상 종신형이다. 하지만 일부 혐의는 무죄판결을 받은 데다 핵심 측근 상당수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 분노한 시민들이 격렬한 항의시위에 나섰다.

이집트 형사재판부는 이날 카이로 외곽 경찰학교법정에서 열린 공판에서 “시위대를 숨지게 한 경찰의 강경 진압을 ‘방조한’ 혐의”로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 하비브 엘아들리 전 내무부 장관에게 법정최고형인 25년형을 선고했다. 아흐메드 리파트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무바라크의 30년 집권은 이집트의 암흑시기”라며 “시위대 유혈진압을 막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스민혁명으로 물러난 지도자 가운데 최초로 법의 심판을 받은 사례이자 이집트 역사상 유죄를 선고받은 첫 번째 국가원수다.

그러나 선고를 지켜봤던 이집트 국민의 반응은 환호보다 탄식이 컸다. 최고형을 선고했는데도 종신형이나 사형이 아닌 이유는 살인이나 교사 혐의가 아닌 방조죄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경찰 수뇌부 6명에겐 “구체적 증거가 없다”며 무죄가 선고됐다. 무바라크와 두 아들 가말, 알라에게 적용됐던 2건의 부정부패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국민의 기대와 어긋난 이번 선고는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였다”고 논평했다. 재판에 관여한 사법부 인사들이 대다수 무바라크 정권 시절 임명돼 피고 측과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혁명 기간 850여 명이나 숨졌음에도 “공권력이 직접 관여했단 증거가 없다”며 지난해 1월 25∼31일 목숨을 잃은 약 240명에 대한 살인 혐의만 적용했다. 부패 혐의 역시 30년 독재 기간 중 대표적 친무바라크 기업인 ‘살렘’과 연루된 호화빌라 5채 매입과 천연가스 독점판매 단 2건만 법정에 세워졌다. 핵심 증인인 후세인 살렘 회장은 스페인으로 도망가 법정에 세우지도 못했다.

판결에 실망한 국민들의 분노는 재스민혁명의 재래(再來)를 방불케 할 만큼 거셌다. 혁명 시위대의 본거지였던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1만 명 이상이 운집해 “살인자 처형”을 외쳤다. 알렉산드리아와 이스마일, 수에즈 등지에도 수천 명이 모여 항의집회를 열었다. 시위희생자 유족모임은 “이따위 촌극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무바라크 측은 항소 의견을 밝혔다. 이집트는 3심제다.

아랍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이번 선고는 16일부터 열리는 대선 2차 투표란 화약더미에 불쏘시개를 던진 격”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결선투표에 오른 2명의 후보는 무바라크 정권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아흐메드 샤피끄(71)와 무슬림형제단이 공개 지지한 무함마드 무르시 자유정의당 총재(61)다. 선고 직후 무르시 총재는 “대통령이 되면 다시 재판을 열겠다”며 민심을 다독인 반면, 샤피끄 후보는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며 사법부 편을 들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법정에 출석한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선고 내내 간이침상에 팔짱을 끼고 누워 눈을 꼭 감은 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두 아들도 굳은 표정으로 줄곧 꾸란을 암송하는 모습이었다. 두 아들은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향후 주가 조작 혐의로 또 다른 재판을 받을 예정이어서 교도소에 다시 수감됐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아랍의 봄#이집트#독재자#무바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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