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수사… 檢 “캄캄한 방에서 바늘찾기” 고충 토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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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발식 은닉… 다 들춰봐야” 한화도 물증확보 시간걸릴 듯

“캄캄한 방에서 수많은 바늘을 찾는 것과 똑같다.”

태광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서부지검의 봉욱 차장은 31일 현재의 수사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다. 그는 “(태광그룹의) 차명계좌가 딱 한정돼 있다면 그것만 보면 되지만 비자금이 문어발식으로 퍼져 있어 다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수사에 착수한 이후 2주일여가 지났지만 수많은 차명계좌와 그 연결 계좌를 통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비자금의 전체 규모를 파악하는 데에 수사가 여전히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검찰 수사가 답보상태인 것만은 아니다. 비자금의 윤곽을 상당 부분 파악하는 등 수사의 1라운드는 마친 상태다. 검찰은 지금까지 이호진 그룹 회장(48)과 이 회장의 어머니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82)를 제외하고는 그룹 계열사의 전현직 임원을 거의 다 소환 조사했다. 그룹 자금관리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오용일 태광그룹 부회장(60)과 박명석 대한화섬 대표이사(61), 그룹의 새 지배회사인 한국도서보급의 배준호 대표와 김남태 전 대표, 최운형 전 대한화섬 대표 등이 줄줄이 한 차례 이상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이는 이 회장과 이 상무를 겨냥한 본격적인 2라운드 수사 준비가 끝났다는 얘기다. 검찰이 지난 주말에 참고인 소환 조사를 멈추고 그동안 확보한 진술과 압수물 등을 전반적으로 정리하는 데 주력한 것도 이 회장 모자(母子)와의 본게임을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서울서부지검이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는 9월 초 수사에 착수한 지 두 달이 돼 가지만 여전히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달 27일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를 추가로 압수수색하고 29일에는 대한생명 인수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 팀장급 직원을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차명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계속 새로운 가지들이 뻗쳐 나오고 이를 쫓아가다 보니 확인할 부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두드러진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여기저기 의심나는 곳을 계속 파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과거와 달라진 수사 패러다임을 고려하면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과거 검찰 수사는 밤샘 수사로 자백을 받아내 이를 토대로 수사를 했으나 지금은 물증을 먼저 찾아낸 뒤 진술로 이를 확인해가는 방식으로 수사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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